○·나현 초단 ●·펑리야오 5단
제5보(57~64)=승부의 기로가 조용히 찾아왔다. 승부에 대한 감각이랄까, 그 비슷한 어떤 것으로 인해 지금부터 몇 수 사이에서 순식간에 판세가 기울게 된다. 물론 결과론일 뿐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세상사는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선명하고 모든 게 너무 쉽다.
펑리야오 5단은 57로 어깨를 짚는다. 백을 압박하며 상변을 지우려는 수. 하지만 반사적으로 A에 밀어야 할 나현 초단이 58, 60 등으로 자꾸 뜸을 들인다. 뭔가 냄새를 맡은 것일까. A로 밀다가 자칫 후수라도 잡는 날이면 좌상귀에 돌입할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흑은 B나 C 등을 아껴두고 있을 뿐 이런 수는 언제나 흑의 권리다.
나현은 62로 직행했다. 63엔 64. 이 간단한 맥점으로 귀는 죽지 않는다.
62를 당하는 순간 펑리야오는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B나 C 등 흑이 귀를 선수로 굳히는 수단은 많았다. 그걸 미룬 게 잘못이었을까. 57이 안이했을까. 박영훈 9단이 제시한 연구 결과가 ‘참고도’ 흑1~5의 수순이다. 흑1, 3을 먼저 선수한 뒤 5로 삭감해야 옳다는 것. 프로라면 흑1, 3 같은 속수는 떠올리기도 힘들다. 그러나 지금은 체면을 떠나 귀를 사수하는 게 급선무였다는 것. 바둑은 이래서 어렵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