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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원 펀치’ 한국 원성진 vs ‘자유자재’ 중국 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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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원성진 9단(左), 구리 9단(右)

“구리 9단은 열린 바둑을 둔다. 스케일이 크고 창의적이다. 이게 구리의 진정한 강점이다.”

 원성진 9단은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결승에 오른 이후 구리 9단의 바둑만 생각해 왔다. 복기를 통해 분석하고 조각 내며 약점을 찾아 구석구석을 뒤졌다. 구리는 자유자재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대국에서 시험적인 수법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대담성이 놀라웠다. 고정관념이나 격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구리의 자신감과 창의성이 두렵고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하나 결승전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원성진은 더 이상 구리의 바둑을 보지 않는다. “구리를 이기려면 구리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구리를 이기려면 구리의 바둑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리 역시 약점은 있다. 창의적인 만큼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을 제대로 공략한다면 승리는 내 것이 될 수 있다.”

 원성진 대 구리의 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 3번기가 5~7일 사흘간 상하이(上海) 그랜드센트럴호텔에서 열린다(우승상금 2억원, 준우승 7000만원). 어려서부터 85년생 동갑인 박영훈·최철한과 함께 ‘송아지 삼총사’로 불리며 한국 바둑을 이끌어갈 기대주로 촉망 받았던 원성진은 프로 생활 13년째인 이제야 생애 처음으로 세계무대 결승전을 맞게 됐다. 그동안 친구인 박영훈이나 최철한에게 크게 처져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원성진은 12월의 한국 랭킹에서 이세돌-박정환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대기만성의 전형인 원성진이 거북이걸음으로 박영훈과 최철한을 모두 따라잡은 것이다. 아직 국내 대회 4회 우승이 전부지만 원성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성진의 별명은 ‘원펀치’. 강한 수읽기 능력을 바탕으로 꾹 참고 기다리다가 한 방에 상대를 쓰러뜨리는 승부 스타일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원성진은 원펀치를 고집하지 않는다. ‘실리 감각’과 ‘스피드’에 새롭게 눈을 뜨며 스타일이 변했고 사실은 이 같은 변신 속에서 대기만성의 꽃을 피우게 됐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세계대회 7회 우승의 구리보다 크게 뒤진다. 중국의 실질적 최강자인 구리는 그의 고향인 충칭(重慶)에서는 오래전부터 최고의 스타이고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 곧 공산당 고위직에 오를 것이란 소문도 있다. 한국의 이세돌 9단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구리는 지난해 삼성화재배 우승자이기도 하다. 한국의 허영호 9단이 지난해 결승에서 구리에게 패배했다.

 올해 결승전은 어찌 될까. 원성진은 자신의 바람대로 구리의 2연패를 저지할 수 있을까. 원성진은 힘 주어 말한다. “승리를 탐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겐 일생일대의 승부이기에 꼭 이기고 싶다. 실력으로 구리를 꺾고 싶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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