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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렛잇비’와 ‘이매진’의 하모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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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선구
산업부장

화향백리(花香百里)요, 주향천리(酒香千里)라 했다. 꽃 향기는 백리를, 술 냄새는 천리를 간다는 말이다. 꽃보다 술 한잔이 더 생각나는 연말이다. 정몽구(73) 현대차그룹 회장은 나이 탓인지 즐겨 마시던 양주 시바스 리갈을 끊었다. 폭탄주도 멀리한다. 그래도 폭탄주 기분은 낸다. 소주와 맥주를 나란히 놓고, 소주 한 잔에 맥주 한 모금으로 입가심하는 걸로 폭탄을 대신한다. 최지성(60) 삼성전자 부회장은 와인 원샷이 주특기다. 큰 와인 잔에 와인을 가득 부은 뒤 한 번에 마신다. 오랜 해외영업 때 써먹던 방법인데, 덩치 큰 서양인들도 두 잔이면 나가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꽃 향기 자욱하고 술 냄새 그윽해도 사람 체취만 하랴. 사람의 향기와 냄새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人香萬里). 좋은 사람과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고 오래 간다는 뜻이다.

 연말연시는 정겨운 송년모임 철이자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야 하는 인사철이기도 하다. 정몽구 회장과 최지성 부회장 같은 오너나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고심하는 때인 것이다. 벌써 주요 기업들은 인사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인사를 할 때 잘나가는 기업은 통상 라이벌 혹은 상호 보완재 역할을 하는 인재들을 내세워 경쟁시킨다. 반면 위기를 맞은 기업은 과감히 대체재를 발탁해 변화를 꾀한다.

 가령 삼성전자의 경우 투톱-원톱-투톱 시스템을 번갈아 활용한다. 요즘 다소 고전하고는 있지만, 기술의 혼다는 창업주 스스로 보완재를 택해 커왔다. 지난해 일본 도쿄 출장 때 혼다 본사에서 만난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혼다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와 후지사와 다케오(藤澤武夫)입니다. 두 사람이 손잡은 게 오늘날의 혼다를 있게 했지요.”

 혼다는 기술의 신, 후지사와는 영업의 신으로 불린다. 서로에게 없는 게 서로에게 있었다.

 대체 인물을 과감히 앞세운 기업엔 P&G가 있다. 이 회사는 경영난에 빠진 2000년, 앨런 래플리를 과감히 구원투수로 뽑았다. 그런데 주식시장은 더 고꾸라졌다. 투자자들이 “도대체 앨런이 누구냐”며 주식을 팔아서였다. 래플리는 “신제품의 반은 내부에서, 반은 외부에서 나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도입된 외부 기술 중 하나가 막대사탕을 기구에 꽂고 버튼을 누르면 돌아가는 스핀 팝. 이를 이용해 전동칫솔을 만들었더니 대박이 났다. 2001년 P&G의 순이익 29억 달러는 2010년 127억 달러로 뛰었다. 래플리는 훗날 ‘혁신 경영의 구루’로 치켜세워졌다.

 보완재건 대체재건 불꽃 튀는 경쟁은 굉장한 결과를 낸다. 이 같은 사례를 문화예술 분야에서 찾아보자. 비틀스의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둘은 철천지 원수지간이었다. 성격부터 판이했다. 자존심이 센 레넌은 다혈질의 소유자. 반면 매카트니는 감성적이며 부드러웠다. 둘의 성향이 다르다 보니 자주 대립했고, 음악적 취향 역시 딴판이었다. 불후의 명곡 ‘Yesterday’를 작곡한 매카트니가 ‘Let It Be’를 만들었을 때 레넌은 ‘Imagine’으로 대응했을 정도였다. 매카트니가 ‘Let It Be’를 통해 ‘순리를 따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자 레넌은 ‘Imagine’에서 ‘뭔 소리냐, 마음껏 상상하고 꿈꿔라’는 함의를 담아 맞섰으니 참 대단한 라이벌이었다. 이렇게 서로 으르렁대며 경쟁한 덕에 오히려 비틀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레넌과 매카트니의 지독한 경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최악이다. 세계 무대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할 우리 기업엔 치명적이다. 내년 경기가 더 나빠진다고 하는 마당이다.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각 ‘Let It Be’ 하고 ‘Imagine’ 하되, 이 둘의 절묘한 하모니(조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꽃보다 술이요, 술보다 사람이다.

정선구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