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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과 ‘자산’, 그 갈림길에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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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그해, 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상(堂上·대청 위)에서 다스리는 자들은 어떻게 묶고 묶일까를 고민했다. 힘을 쥔 자도, 힘을 잃은 자도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무릎을 맞댔다. 맞댄 머리와 무릎 사이로 휑한 바람이 일었다. 그들에겐 지나간 해나 지나가고 있는 해보다 새로 올 해가 중요했다. 그래서 그들의 가느다란 눈은 당하(堂下·대청 아래), 저자(시장)의 흐름을 좇았다.

 저자에선 기댈 곳을 찾지 못한 마음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남자, 여자, 젊은 자, 나이 든 자, 구분이 없었다. 젊은 자들은 학문을 마친 뒤에도 입신(立身)하지 못했다. 나이 든 자들은 다가올 앞날에 속수무책이었다. 다들 그럴듯한 옷을 걸쳤지만 빈 소매 속으로 삭풍이 들이쳤다. 몸은 머물렀지만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계속 흘러갔다. 주민(住民)인 동시에 유민(流民)이었다.

 그 마음들 언저리로 크고 작은 말(言)이 생겨났다. 말들은 스스로 생명을 얻어 수많은 동심원을 그렸다. 벼슬 잃은 당상관들과 뜻을 펴지 못한 서생들, 때를 기다리던 광대들이 저자로 뛰쳐나와 좌판을 벌였다. 말들이 안개를 이뤄 자욱하게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눈 먼 말과 눈 가린 말이 힘을 겨루고 부딪혔다. 그들이 스쳐간 자리엔 성난 말, 상처 난 말이 돋아났다.

 일찍이 의술을 펴다 신기술을 익혀 큰 부를 이룬 학자가 있었다. 그는 현실의 구체적 고통을 상식의 추상적 언어로 어루만졌다. 많은 이들이 그의 흰 도포 자락을 따랐다. 어떤 자들은 작당하여 남사당패를 꾸렸다. 그들은 시정잡배의 말투로 묘당(廟堂·조정)을 공격하고 조롱했다. 요언(妖言)에 가까움을 알면서도 그 통쾌함에 몸을 떠는 자들이 여럿이었다. 저자의 말들을 잉태한 건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입이 아니었다. 허기진 마음에 뭐라도 듣고자 하는 귀였다. 거리와 골목의 귀들은 당상을 향해 쉴 새 없이 외치고 있었다. “바꿔라. 바꾸지 않으면 너희를 바꾸리니.”

 당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순응해온 자들의 무서움은 멀게만 느껴졌다. 듣기 싫은 말 걷어내는 데 골몰했고 바꾸는 체, 바뀌는 체 헛기침을 해댔다. “아무리 바뀌더라도 나는 무탈하지 아니한가”, 관(冠)을 눌러쓴 자들이 되물었다. 망설였던 시간은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당상에서 최루 가루에 눈물을 쏟았다는 풍문이 들려왔다. 허망한 눈물이었다.

 그해, 소설 한 권이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시린 마음을 품었다. 『흑산(黑山)』은 건조한 문체로 묻고 있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절망만이 지배하는 흑산인가, 희망의 빛이 숨어 있는 자산(玆山)인가. 정약전과 황사영의 시대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우리의 말들은 어디서 흘러와 어디로 가는가.

신묘년 섣달 초하루. 『흑산』의 말하는 법에 의탁해 기자, 이 글을 적는다.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