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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5조 챙길 론스타, 연 수익률은 1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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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재술
딜로이트 안진 대표이사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3개나 됐던 우리나라 은행은 이제 10여 개의 금융지주그룹과 개별은행으로 단출해졌다. 그동안 20여 개 은행이 퇴출 또는 합병으로 사라졌고 그중 제일과 외환·한미은행은 외국회사에 매각됐다. 제일은행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에 팔렸다가 스탠더드차터드가 인수해 운영 중이다. 한미은행도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에 넘어갔다가 한국씨티은행이 인수 통합했다.

 요즘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외환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독일계 은행인 코메르츠에 팔렸다. 2003년 카드대란으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자 대주주와 2대 주주인 수출입은행은 증자를 통한 경영 정상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코메르츠은행은 증자여력이 없었고,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이었다.

 차선책으로 떠오른 것이 제3자 매각이었고, 인수주체로 물망에 오른 대상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였다. 당시에도 헐값 매각과 대주주 적격성 시비가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았던 정부 당국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렸다.

 알려진 대로 현재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먹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 국내기업들이 외국기업에 넘어갈 때는 별 얘기가 없다가 유독 이번에만 말들이 많다는 점이다.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을 팔 때나, 칼라일이 한미은행을 매각할 때는 먹튀 시비가 없었다.

 물론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쉬운 게 많아 앞뒤 돌볼 틈 없이 매각을 서둘렀던 때에 비해 지금은 여력이 생겼으니 이것저것 챙겨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사자가 우리 기업(하나금융)이어서 더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은 이른바 외국계 사모펀드의 속성과 사업방식이다. 론스타나 뉴브리지캐피털 등 사모펀드들은 기본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은 펀드다. 실제로 이러한 사모펀드들은 통상 연간 30% 정도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대개 곤경에 처한 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키고 나서 3~5년 뒤 회사를 처분하고 빠져 나온다. 그래야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만큼의 이익을 실현시켜 줄 수 있고 다음에 다시 투자자를 모을 수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으로 거둬들일 이익이 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벌어 간다니 배가 아프긴 하다. 하지만 2조원 이상을 ‘무려’ 8년간 투자했고, 배당 등을 감안할 때 연간 수익률이 약 18%에 그친다고 하니 그들 입장에서는 과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외환위기 때 국내 부실채권과 부동산을 사들인 골드먼삭스 등 외국 투자은행은 연간 30% 이상의 수익률을 올렸다. 2003년 가을 종합주가지수가 780 선에 머물고 있을 때 우량상장 기업에 투자했더라도 그 정도의 수익률은 거뜬하게 올렸을 것이다.

 론스타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금융위원회에 인가신청 할 당시의 주주 구성을 나중에 실제 투자할 때는 다른 회사로 바꿔 대주주 적격성 시비를 피해가려 한 것은 꼼수를 부린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일을 지금 들춰본들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같은 논리대로라면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털과 칼라일도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해야 하나.

 걸림돌은 더 있다. 수익률을 지상과제로 삼는 속성상 사모펀드들은 돈이 된다 싶으면 대상이 일반기업이건 금융회사건 가리지 않고 투자한다. 따라서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애매하다. 징벌적 매각명령을 통해 현재의 시장가격에 매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분히 감정적이다. 실제로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현재 주가가 과도하게 떨어진 상태이고, 하나금융의 예정 인수가격은 외환은행 장부가 수준에 불과하다.

 하루 빨리 비생산적인 먹튀 논쟁에서 헤어나와 전열을 가다듬고 미래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도 골드먼삭스와 같은 대형 투자은행을 키워야 한다. 론스타에 버금가는 사모펀드를 조성해 유럽시장에 싸게 나온 알짜 기업을 사러 가야 한다. 또 향후 중국 경제가 휘청거릴 때를 대비해 부실채권이나 부실기업을 싸게 사 돈을 벌 기회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도 대형 종합 투자사업자 육성법안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론스타의 먹튀 논란에 파묻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우리 금융산업에서 관치나 ‘국민정서법’이 아니라 법치가 정착되려면 좀 더 차가운 머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재술 딜로이트 안진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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