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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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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강화도 고려산 서쪽 기슭 작은 초당에 녹음이 짙다. 앉은 품새는 의구하되 낯빛은 철 따라 바꾸는 게 산이라지만 고려산의 산색(山色)은 다채롭기로 이름 높다. 겨울 수묵담채화 풍경에서 연분홍 진달래로 꽃단장한 새색시 얼굴의 봄, 연초록이 진초록으로 깊어지다 못해 검은 빛이 도는 이즈음의 산기슭에는 연꽃이 만발했다. 청련, 백련, 홍련, 흑련, 황련 이렇게 다섯 가지 연꽃이 빙 둘러 핀대서 오련산(五蓮山)이라고도 했다.

 “아무래도 내가 오래 못 버틸 거 같으이. 휴-, 삼십 년 가까이 나라 걱정으로 애를 태웠더니, 오장이 썩어 문드러졌나 보오. 몽고놈들의 칼바람은 잦아들 기미가 없고 거 뭣이냐, 아직 대장경 불사도 마치지 못했는데….”

일러스트=이용규

 얼굴이 검푸른 노인이 커다란 고인돌에 기대 서서 숨을 헐떡거린다. 금으로 치장한 관모는 제왕의 관을 연상케 했다. 머리통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돼 보인다. 초당 마루에 앉아 있는 노파가 눈을 가녀리게 뜨고 부채질을 한다.

 “임자, 내가 극락 가려면 어떤 굿을 해야 하누? 일장공성(一將功成)에 만골고(萬骨枯)라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자니… 끄음, 본의 아니게 사람 목숨을 너무….”

 죽였다는 말은 차마 입에 담기 싫은 눈치였다. 입으로는 관세음보살과 석가모니를 찾고 행동으로는 생지옥을 만들었던 비정한 세월이었다. 그렇게 자그마치 삼십 년이나 권력을 누려왔다. 피 묻히지 않은 날을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평생이 잔인한 도륙의 연대기였다.

 “피를 먹는 호랑이가 풀 뜯는 사슴을 닮을 수야 없지요.”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노파의 뽀얀 얼굴은 담담하다.

 “임자, 나는 요즘 불안하오. 내일을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 놓은 게 없는 것 같아. 자꾸 빈털터리가 돼버리는 망상이 들거든. 밤낮 헛것들까지 보이고.”

 노인의 검버섯 핀 볼이 씰룩거린다.

 “집정께서 불안하다니요. 무꾸리해 주며 밥 빌어먹고 사는 이 늙은이가 듣기 민망하네요. 대장경 판각불사에, 후계까지 끌끌한 자손들로 마련해 두셨지 않습니까.”

 노파는 엷은 미소를 흘린다.

 “개경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영영 바다에 갇혀 지내다 꺾일 팔잘세. 답답한데 보문사에 절집보다 큰 해수관음상 하나를 세우면 어떨까 싶어.”

 대장경 판각불사도 마치기 전에 또 일을 만들 요량이었다. 노파가 초당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뜬다.

 “불공은 그만하면 됐고 그 돈으로 배고픈 사람들 밥이나 먹입시다!”

 “어떻게?”

 “마니산, 혈구산, 진강산, 고려산, 별립산, 퇴모산, 낙조봉, 낙가산에 각각 소 한 마리씩을 바쳐 강화도 일대 산신들을 위로하면 어떨지.”

 “산신제를?”

 “말이 산신제지 강화 사람들 고깃국 끓여 먹이려는 구실이지요. 술도 넉넉히 빚어 내놓으면 민심을 얻는 데 더없이 좋을 거요.”

 “에이, 강화 사람들 둘만 모였다 하면 나와 내 자손들 험담이라던데 그깟 소 몇 마리로 무슨 공덕을 짓겠누?”

 최이가 마루로 올라와 난간에 등을 기대앉으며 다리를 쭉 뻗는다. 민심이 험하다는 건 알고 있는 눈치다.

 “그래서 더 거둬 먹이자는 거지요. 아무래도 먹은 놈이 조용한 거니까.”

 “뜬금없이 한여름에 웬 산신제냐고 할 텐데?”

 “국태민안! 시도 때도 없는 명분이지요.”

 “그렇지. 그건 그래. 역시 흑련일세. 지난 삼십 년 동안 임자 말 듣고 손해 본 거 하나도 없어. 고럼, 고럼.”

 최이의 안색이 밝아지면서 경비 걱정 말고 최상품으로 준비해 주라고 이른다. 산신제를 준비하고 지내는 동안만큼은 시름을 덜게 됐다. 불안감이 훌쩍 달아난다.

 노파가 마루 위, 작은 첩지 한 장을 최이에게 건넨다. 몇몇 문인과 무인 이름들이 적혀 있다. 벼슬을 올려달라는 인사청탁이었다. 최이는 쓱 훑어본 다음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첩지를 소매 속에 챙기는 그에게 노파가 인보 얘기를 꺼낸다.

 “인보 스님이 돌아오면 간자 노릇 그만두게 하고 승선과에 급제시킵시다. 명줄이 짧아서 절집에 판 자식인데 간자나 시키는 게 모양새가 영 사납답니다.”

 “그야 뭐가 어렵겠나. 대장경 판각불사도 얼추 마쳐가는데 늙은 고라니 같은 수기 도승통 따위를 더 감시해서 뭐해. 강도로 귀환하면 족쇄를 풀어줌세. 그간 삽살개 역할 충직히 해줬다네. 임자가 사람은 잘 보지.”

 최이는 곰발바닥 같은 손으로 노파의 작은 손을 잡아 다독거린다. 환갑을 앞둔 노파였지만 수줍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 옛날 헙헙하던 장군을 처음 만나던 때의 여심(女心)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세월 가고 강산이 몇 번 바뀌어도 변치 않는 감정이었다. 꽃이 지고 물이 내려 여자 구실이 귀찮아진 나이가 돼도 그 감정은 새뜻하게 피어난다. 무릇 사내의 매력이란 헌걸찬 기세에 있다. 천하를 호령하는 사내의 기세는 시든 여인의 마음자리에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노파는 사내의 가슴팍에 살포시 옆머리를 기댔다가 뗀다. 이 사내가 정방(政房)을 설치하고 인사권을 장악하던 때 신(神)의 딸이기를 잠시 접고 이 사내를 신으로 모신 적이 있었다. 꿈꾸듯 예언이 터져 나왔고 그때마다 적중했다. 개경의 황궁이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고려국이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엇이건 이 사내에게 말하면 그대로 실현되었다. 신성을 띤 사내답게 권능이 넘쳐났다.

 “나 가봄세. 임자의 간절한 기도로 근근이 버티는 거 잘 아네.”

 수레 하나 가득 싣고 온 귀중품을 남겨두고 그가 떠난다. 노파는 호위무사들에 둘러싸인 최이의 가마를 향해 머리를 숙인다.

 무당 흑련의 일생은 간명하다. 최이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생의 한가운데쯤에서 가르마가 뚜렷하게 타진다. 그사이 많은 손님을 받아내긴 했지만 그저 스쳐가는 인연들일 뿐이었다. 흑련은 최이의 정인이자 가속이나 다름없는 전속 무당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신당으로 들어가는 흑련의 안색이 어둡다. 하늘같이 떠받들어온 그가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있었다. 기세는 꺾였고 눈빛은 탁해졌다.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격무를 보는 것도 문제지만 수많은 첩과 교접하느라 중국에서 들여온 온갖 약제를 지나치게 남용해 온 것이 치명적인 독이었다. 정력은 강해져서 줄곧 여색을 탐닉했지만 간이 상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흑련은 제단에 향을 사른다. 단군 한배검과 일월성신, 산신과 용왕께 간절히 기도한다. 집정 최이의 건강을 지켜달라고. 하지만 잘 안다. 이런 기도는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는 걸. 욕망은 절대로 기도가 되지 못한다. 누군가의 욕망을 채우자면 다른 이의 결핍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므로. 따라서 그런 욕망의 충족은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안달한다. 신이 그것을 들어줄 리가 없다. 하늘은 개개인의 소원에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원한다고 하늘이 햇빛을 주고 비를 내려주는 게 아니다. 누군가가 햇빛을 원하는 그때 그 공간에서 다른 누군가는 비를 애타게 기다릴 수도 있다. 누군가가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다른 이도 역시 같은 기도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두고 두 연적(戀敵)이 다투며 사랑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하늘더러 어쩌란 말인가.

 신의 딸로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무수한 욕망의 발원기도를 했다. 그러는 동안 흑련이 정리한 게 있다. 이 세상에서 욕망의 절반이 이루어지면 고통은 두 배로 늘어난다고. 무서운 인과법이 아닐 수 없다.

 기도발이 안 선다. 정화수나 갈 생각으로 물사발을 든다. 연꽃밭이 보인다. 인보가 누워 있다. 정화수 그릇 속에서 찰나에 떴다가 사라지는 영상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인보에게 탈이라도 난 걸까. 샘에서 두레박을 끌어올리는데 다시 인보의 얼굴이 뜬다. 인보는 눈을 감고 있다. 입술이 검다. 그만 두레박을 놓쳐버리고 만다. 다시 두레박질을 해서 물을 뜬 다음 신당에 올리고 방바닥에 엎드린다. 검은 하늘, 검은 땅이다. 그뿐 더 이상 아무런 영상도 소리도 없다. 머릿속이 하얗다.

 “어머니, 저 왔네요.”

 너울을 쓴 젊은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하지만 신당 방바닥에 엎드려 있는 노파는 일어날 기미가 없다.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별일이다. 시아비 가마 나가기가 바쁘게 며느리 가마가 들어오네.”

 흑련이 일어나 앉으며 두런댄다.

 “다 알아보고 시간 넉넉하게 맞춰서 온 거랍니다.”

 “그래, 술수 부려서 호랑이굴에 들어가 사니까 좋더냐?”

 “좋아서 하는 일 아니라는 거 잘 아시잖아요.”

 “내 업장이 두껍다. 얻은 자식새끼들이라는 게 하나같이 횡액을 당할 팔자들이라니!”

 “에고고고 덥다. 날도 더운데 웬 신세타령이시우? 기분이라도 시원하게 멱이나 감아요, 우리.”

 젊은 여인이 노파를 이끌고 신당 밖으로 나간다. 대문을 닫아 걸게 하고 시종을 시켜 샘에 가리개를 쳤다. 엉겁결에 샘가로 끌려 나온 노파는 이내 옷이 벗겨졌다. 연거푸 바가지 물을 뒤집어쓴다. 차갑다고 아우성치지만 싫지 않은 눈치다. 한낮에 샘가에서 멱 감는 짓을 이 아이가 아니면 누가 하자고 하겠는가.

 한참 뒤 안채 대청마루로 옮긴 모녀는 뽀얀 얼굴을 마주 대하고서 참외를 먹는다. 너울을 벗은 젊은 여인은 파르스름한 빡빡머리다.

 “낼 모레 유두 날 우리 집 낙성식이랍니다. 어머니가 오셔서 복 빌어주셔야지요.”

 “안 그래도 아까 집정이 말씀하기에 싫다 했느니. 네년이 그 집 망해 놓을 작정으로 들어앉아 있는데 내가 가서 복을 빈다는 게 천벌 받을 짓 아닌감?”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고려에서 제일 무서운 년도 겁은 나나 보지? 하이고 징그러워.”

 노파와 속얘기를 털어놓는 이 젊은 여인이 바로 지양이다. 초파일 연등회 사건을 꾸며 지주사 최항의 애첩으로 들어간 그녀는 백련이라는 비구니 행세를 했었다.

 고려 최고의 각수장이 김승의 딸 지양이 흑련을 처음 찾은 건 지난 초봄. 흑련이 집정 최이의 전속 무당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지양은 흑련에게 기구한 운명을 하소연한다.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은 채로였다.

 “비구니가 무당집에 와도 되누? 부처님은 이런 데 와서 뭘 묻는 짓 못하게 했거늘.”

 흑련은 대뜸 지양을 나무랐다.

 “오늘 머리를 밀었네요. 비구니 되는 건 죽기보다 싫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그래서 어르신 앞에서 넋두리로 응어리진 속이나 한바탕 풀어놓고서 절집으로 돌아가려고요. 그래야 살 것 같네요.”

 지양의 단아한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유배 온 선녀로구나.”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해버리는 매혹적인 자태였다. 흑련은 지양의 눈빛을 살폈다. 결코 음행이나 일삼는 미색이 아니었다. 이 비구니는 분명 숫처녀였고 타고난 기운이 청수했다. 생년월일을 물은 그녀가 왼손을 펴서 엄지로 육십갑자를 돌리다 눈을 감는다. 지양이 저고리 소매를 흔든다. 소매 끝에서 씁쓰름한 향기가 풍겨 나와 흑련의 콧속으로 스며든다. 사람의 의식을 이완시키고 감상적으로 만드는 향기다. 대식국에서 들어온 향료인데 고려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인생도 있구나. 지상에서 널 거둬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흑련이 애처롭게 지양을 바라본다. 지양이 흐느끼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역정을 풀어놓는다.

 아버지는 해인사 사하촌 각사 마을에 사는 전각가였다. 경전뿐만 아니라 현판이나 낙관 새기는 솜씨가 빼어났다. 해인사 경판 판각은 물론이었고 멀리 대구나 부산까지 이름이 나서 명문가의 현판을 도맡아 제작했다. 나무나 돌에 경전과 명구 새기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이 젊은 예인(藝人)은 장가드는 것도 잊고 조각칼로 도(道)를 닦았다. 가까운 사찰의 비구니 하나가 이 예인의 숭고한 예술혼에 마음이 꽂혔다. 처음에는 한두 점의 전각작품을 의뢰하다가 옷을 지어주고 이따금씩 공양까지 지어주고 가게 되었다. 둘 다 불심이 깊고 성과 속의 분별이 엄연했으므로 지초와 난초 같은 사귐이었다.

 비구니가 예인의 집에 들른 어느 겨울날, 세찬 겨울비가 내렸다. 곧 그치려니 하고 차를 끓여 마시며 기다렸는데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비가 그칠 줄 몰랐다. 저녁 예불 시간을 놓친 비구니는 좌불안석이었다. 저녁도 지을 수 없었다. 어두컴컴해지자 비로소 날이 갰다. 쾌청한 하늘에 둥그렇고 깨끗한 달이 떠올랐다. 비구니는 바랑을 메고 달빛 아래로 나섰다. 예인이 팔뚝에 토시를 낀 채로 배웅을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비구니의 민머리에 시린 달빛이 부서졌다.

 “산길이 얼었을 텐데….”

 예인은 내심 걱정이 앞섰다. 달빛 때문이었을까. 예인은 비구니의 볼록한 이마와 오뚝한 코로 흘러내려온 옆얼굴 선이 참으로 우아하다고 느꼈다. 버선의 수눅 선, 백학의 날개 선, 비천상의 옷주름 선과는 또 다른 우아함이었다. 예인은 비구니가 얼굴에 품은 그 선을 뚫어지게 관찰하고 뇌리에 새겼다.

 “뭐가 묻기라도 했나요?”

 비구니가 가녀린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제 보니 손가락도 예사롭지 않은 선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예인은 그 손가락 선도 뇌리에 새겨두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선들임을 그때까지도 몰랐다.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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