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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당신도 시인이 될 수 있다, 왜 사는가 묻고 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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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400쪽, 1만5000원

요즘 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시집을 찾기 어렵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와 노후대책이 막막한 중년에게 시집은 한가한 소일거리로 비칠지 모른다. 어떤 책이든 자기계발과 성공 스토리가 주요 소재가 되는 ‘실용의 시대’에 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일까. 신간 『철학카페에서 시읽기』는 시대의 조류에 조용히 반기를 든다.

 시 읽기를 권하는 저자 김용규는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후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해 왔다.

 철학과 시의 만남이다. 한용운·이상·서정주·김수영·신경림·김남조·문정희·최승자·정희성·정호승 등 한국 시인부터 네루다·보들레르·브레히트 등 외국시인까지 저자에게 울림이 컸던 이들이다. 시 90여 편이 철학적 해설과 함께 등장하는데, 시와 철학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저자는 칠레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모티브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별볼일 없던 백수 청년 네그라가 저명한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73)의 우편배달부가 되고, 그의 시를 한 편 두 편 읽어가다 그 자신이 시인이 되며 나아가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다시 그려낸다. 저자가 많이 인용하는 철학자는 하이데거·사르트르·마르셀 등 실존주의 대가들이다. 실존주의의 핵심 키워드는 ‘존재’.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존재라는 용어는 대개 ‘존재의 의미’라는 뜻으로 이해되는데, 존재의 의미를 묻는 시인의 작업과 겹쳐진다. 시 읽기가 마치 수수께끼 퍼즐 푸는 것같이 어렵게 보이는 이유는 시인들이 구사하는 다양한 비유 때문이다. 왜 사는가라는 존재의 의미를 물을 때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저자는 던지고 있다.

 정호승 시인이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고 했듯이 외로움과 그리움은 시의 영원한 소재다. 많은 이들이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동화되는 길을 택하곤 하는데, 그렇게 해선 근본적 외로움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바로 시인과 철학자다. 철학자들이 자신만의 ‘본래적 삶’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말을 했다면, 그런 의미를 시인 김수영은 “눈은 살아 있다 /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 기침을 하자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표현했다. 시인 최승자가 “구르는 헛바퀴의 완강한 힘, 치욕이여 / 중국집 짬뽕 속의 삶은 바퀴벌레여,… 손들엇 탕탕!”이라고 한 표현도 이와 연관된다.

 시에는 사람과 세상을 바꿔 놓는 힘이 있는데, 그 힘의 실체를 저자는 사랑이라고 본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와 시인 김남조만이 “그대가 있음에 내가 있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무수한 철학과 시가 그러한 존재의 본질을 반복하고 있음을 저자는 새삼 환기시키면서, 낙엽 뒹구는 가을날, 서점에 가서 시집을 안 사면 뭘 사느냐고 유혹하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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