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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왜 죽기살기로 싸웠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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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신들의 전쟁
김원익 지음, 알렙
487쪽, 1만9500원

태초의 카오스에서 등장한 대지의 신 가이아는 남편 우라노스(하늘의 신)와 앙숙이었다. 아들(티탄족) 열두 명을 뒀던 부부는 ‘적과의 동침’을 벗어나 전면전에 돌입한다. “누가 아빌 죽여 날 구할꼬?” 이때 썩 나선 게 막내 크로노스(시간의 신). 도무지 겁 없던 그는 어미가 쥐어준 낫으로 아비를 친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첫 장면, 신들의 사랑과 전쟁은 그렇게 살벌하다. 우라노스가 뚝뚝 흘리던 피 거품에서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가 탄생한다는 설정도 실은 황당하고 초현실적이다. TV 막장드라마를 압도하는, 로고스(이성) 저편의 뮈토스(이야기)세계는 그리스·북유럽 모두가 신들의 전쟁담이다.

 단군신화는 신화사에 유례없는 상생과 해피엔딩 스토리. 단 장막 뒤엔 호랑이족과 곰족의 전쟁코드가 깔려있긴 마찬가지다. 신간 『신들의 전쟁』은 신화의 전쟁담을 척척 뽑는다. 신화에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나카자와 신이치)을 읽거나, ‘우주의 노래’(조지프 캠벨)를 듣는 것과 다른 접근이다.

 사실 영웅 탄생과 시련에서 전쟁 코드를 외면할 순 없지 않을까? 설득력 있다. 그래서 신간의 등장은 고(故) 이윤기 이후 신화전도사의 등장을 알리는 굿 뉴스다. 독문학을 전공했다는 그는 눈이 밝고 시야가 넓다. KBS-TV ‘제우스의 12가지 리더십 강의’로 시선을 끈 바 있으니 유망주 맞다.

 신간은 쉽게 말해 전쟁 코드로 재해석한 그리스신화 열 마당(10개 장). 고구려 건국신화·중국신화도 곁들이는 그에게 신화는 세상이야기의 원형이자, 이야기 중의 이야기다. 그럼 전쟁이란 과연 뭘까? 그건 황금을 놓고 다투는 큰 싸움이다. 황금은 속성상 권력의 상징이며, 동시에 저주의 독배다.

 “모든 권력은 불온하다. 누구든 그 마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120쪽)는 저자의 지적은 신화와 현실에 대한 통찰로 손색없다. 사실 황금 사과의 주인을 가리는 심판으로 시작된 트로이 전쟁을 비롯해 황금소나기(제우스)·황금갑옷(헤라클레스) 등 신화엔 황금 모티브가 수두룩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아직 현실과 픽션의 전쟁담에 빠져든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2004), 지난해 ‘타이탄’, 최근 개봉작 ‘신들의 전쟁’은 원본을 이리저리 비틀지만 결국 신화의 전쟁담이다. 그런 『신들의 전쟁』은 고급반용이지만, 입문자에게도 좋으리라. 그만큼 설득력 있게 쓰였다.

 궁금증 하나. 왜 신화의 여신·남신은 사생결단하고 싸울까. 신화는 현실역사의 반영으로 봐야 한다. 이민족·토착세력 사이의 큰 전쟁 뒤 각자 모시던 신의 서열 재편 이야기가 흔적기관인양 남아 태곳적 얘기로 오늘날 전한다.

 신화는 그걸 “가이아는 우라노스의 사랑을 받아…” 식으로 은근슬쩍 넘어간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서술인데, 이때 ‘행간’을 읽어내야 앞뒤가 훤해진다. 즉 두 집단이 화해 모드로 돌아선 것이다. 그럼 가이아의 복수혈전은 뭘까. 항상 전운은 다시 일어나는 법인데, 그게 세상사와 신화의 켯속일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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