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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열린 광장

카가라마 마을의 새마을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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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

최근 출장을 다녀온 아프리카에서 한국을 보았다. 르완다는 전쟁의 상흔이 깊은 곳이다. 1994년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으로 80여만 명이 집단학살(genocide)당한 불행한 과거가 있다. 지금도 일인당 국민소득이 550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이다. 이 나라가 아픈 상처를 씻고 일어서고 있다. 롤모델은 한국이었다. 르완다 국민들은 한국이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지금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점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준다고 했다.

 내전의 현장인 ‘카가라마 마을’ 입구에는 ‘SAEMAEUL UNDONG’이라는 간판이 서 있다. 경상북도 봉사단원들이 이곳에서 소득증대 사업과 유치원 운영 등 새마을운동을 전수하고 있다. 봉사단원들은 르완다 국민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하루 2L로 제한된 물을 받으러 매일 먼 길을 걸어갔다 오고, 팔은 벼룩에 물려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간다 마케레레대학 돼지사육농장에도 들렀다. 한 학생은 “50여 년 전 한국도 우리처럼 못살았다는 게 백 마디 말보다 더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지난해 부통령과 자신의 비서실장, 그리고 각료들을 가나안농군학교에 보내 새마을운동을 배웠다.

 하지만 아프리카 개발원조 현장을 둘러보며 우리의 아쉬운 현실도 보았다. 현지의 공관장들은 한결같이 “제발 어디 원조 줄 곳 없는지 쇼핑하듯 찾아다니지 말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에서만 무상원조를 주는 기관이 38개에 이르다 보니 경쟁적으로 각국의 카운터파트와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개별적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엇박자가 나는 경우도 많다. 167개 재외공관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둔 외교통상부가 무상원조 전담기관으로 지정돼 있음에도 각 부처와 기관들은 각기 전문성을 내세워 독자적 원조사업에 나서고 있다. 많지 않은 무상원조 예산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도 문제가 있고, 체계적인 원조를 선호하는 외국에서도 통일되고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가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할 때 가장 크게 지적받은 것도 무상원조 사업의 분절화와 중복성이었다. 내년에 OECD로부터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현황에 대해 심층평가(Peer Review)를 받게 되는데 어떤 평가가 나올지 솔직히 걱정이다.

 이달 말 부산에서 개발원조의 최고 권위를 갖는 세계개발원조총회가 개최된다. 개도국들은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한국을 부러움과 존경의 눈으로 보고 있다. 개발원조 분야에서도 한국이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이제는 개별부처의 열정과 이해관계를 내세우기보다는 국익을 위해 힘을 모으면 좋겠다.

민동석 외교통상부 제2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