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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서 한국문화 강연 임권택 감독 “부끄러운 초기작 50편 없어졌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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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임권택 영화감독이 16일(현지시간) 미국 LA 남 캘리포니아대에서 열린 한국문화 특별강연에서 자신의 영화 세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LA중앙일보=백종춘 기자]

“영화감독에 데뷔하고 처음 10년 간 만들었던 50여 편은 도둑맞거나 불에 타 싹 없어졌으면 좋았을텐데….”

 한국 영화계의 거목인 임권택(75) 감독이 이런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아시아 소사이어티 코리아 센터’ 주최로 1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남캘리포니아대에서 열린 한국문화 특별 강좌에서다. “초기 작품에 우리 문화를 제대로 담지 못해 몹시 부끄러웠다”는 뜻이었다.

 임 감독의 영화계 경험담은 “ 1956년 영화판에 뛰어들었다”는 말로 시작됐다. 처음엔 잡일꾼이었다. 그러면서 몇년 동안 존 포드나 윌리엄 와일러 같은 할리우드 거장들의 영화를 섭렵했다. 그는 62년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두만강아 잘 있거라’의 메가폰을 잡으면서 히트작 감독이 됐다. 이후 10년 간 50여 편을 줄줄이 히트시켰다.

 “그런데 후회가 들더군요. 우리 삶과 별로 관계도 없는 허구 스토리이고, 담긴 메시지나 빠른 전개 방식도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였고….”

“그 무렵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감독 데뷔 초기에 만든 영화들이 싹 없어져 버렸으면 했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 이후 임 감독은 제작 방향을 선회하면서 ‘씨받이’ ‘서편제’ ‘춘향’처럼 우리 전통 문화가 담뿍 깃든 영화를 쏟아냈다.

 임 감독은 ‘서편제’와 관련한 일화도 공개했다. 당시 한국판소리협회장이던 고(故) 김소희 명창이 감사패를 증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대접 못 받고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뜬 판소리 명창들의 영령이 도와서 서편제가 히트했다.”

 “아무 말 안 했지만 속으론 ‘내가 고생해서 히트한거지 귀신은 무슨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하니 그게 아니더군요. 찍을 때 먼지가 날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장면에서 회오리 바람이 불기도 했고. 그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 에 대해서는 “한국은 스타를 만들기 위해 5, 6년 훈련을 시키는데, 한국인 아니면 배겨나질 못 한다더라”며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에 세계가 K-팝에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권혁주 기자
사진=백종춘 기자

◆아시아 소사이어티=미국과 아시아의 교류를 위해 1956년 록펠러 3세가 세운 비영리 국제기구. 하부 조직인 코리아 센터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노경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공동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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