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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이어 김형일·장지명까지 … 한국 산악인 한 달 새 5명 희생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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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촐라체북벽원정대 김형일 대장(왼쪽)과 장지명 대원의 마지막 모습. 지난 10일 오전 4시40분, 정상 공격을 떠나기 직전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 대장의 볼이 평소보다 홀쭉하다. 김 대장은 당시 감기 증세가 있었다. 장 대원 역시 상기된 표정이다. [이일영 원정대원 제공]

네팔 촐라체(6440m) 북벽을 등반하던 김형일(44·K2클라이밍팀) 대장과 장지명(32) 대원이 지난 11일 추락해 숨졌다. 둘은 정상이 멀지 않은 6000m 지점에서 사고를 당했다. 시신은 사고지점에서 1300m 추락한 4700m 지점에서 발견됐다. 김 대장은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7000m 봉우리를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한 등반가다. 한국 산악계는 고 박영석 대장의 실종에 이어 한 달 사이에 세계적인 등반가 두 명을 잃었다. 또한 차세대 스타로 기대를 모으던 등반가 세 명이 연달아 희생됐다.

 김 대장은 스팬틱골든피크(7027m)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고 귀국한 2009년 7월,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가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함께 인터뷰한 고 민준영·김팔봉(37)씨도 묵묵부답이었다. 다만 엷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민준영씨는 그로부터 두 달 뒤 네팔 히운출리(6441m)를 등반하다 실종됐다. 김팔봉 대원은 민씨가 실종된 뒤 고산 등반을 접었다.

 왜 희생이 계속되는가. 최근 세계 산악의 흐름은 ‘알파인 방식’이 주류다. 알파인 방식은 최소 인원, 최소 장비로 고정로프 없이 최단 시간에 정상을 공격하는 ‘원샷 등정’이다. 산소탱크와 셰르파의 도움을 받으며 안전한 길을 골라 가는 ‘극지등반 방식’은 구식이 됐다.

 등반가들은 등정 성공에만 의미를 두지 않는다. 등정의 품질, 루트의 난이도를 평가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루트를 개척해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알파인 방식으로 개척한 수많은 루트는 등반가의 브랜드가 된다. 물론 위험하다. 데이터는 전무하며 사고 위험은 최고치에 달한다. 그럴수록 등반가의 도전의욕은 불탄다.

 산악인 김종곤(53)씨는 “거벽 등반가에게는 공통된 꿈이 있다. 아름다운 산을 보면 그곳에 자신만의 등반 선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미친 짓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꿈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등반가에게 ‘도전과 위험은 숙명과도 같다’는 말이다.

 고 김형일 대장은 한국 산악계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남선우(56) 한국등산연구소장은 “(김 대장은) 높이보다는 등반의 본질을 쫓아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남 소장은 “성과보다는 불확실성,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험정신 그리고 그것을 정면으로 극복하려는 인간의 행위가 등반의 본질”이라고 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신루트를 개척한 고 박영석 대장이 안나푸르나 남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하겠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다. 대한산악연맹 이인정(66) 회장은 “세계 산악계의 흐름이 알파인 스타일·신루트다 보니 (등반가들이) 그걸 안 하면 성이 안 차는 것 같더라”고 했다. 김 대장은 1998년 동생 고 김형진(당시 25세)씨를 인도 탈레이사가르(6904m)에서 잃었다. 남 소장은 “히말라야의 대표적 거벽으로 한국 산악계의 숙제였다”고 했다. 한국 산악계는 여러 번의 도전 끝에 2006년 구은수(41)·유상범(34)씨가 등정했다.

 어렵고 험난한 등반의 역사는 10여 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 회장은 “대학생 때 마나슬루에서 동료를 잃고 들어와 총장을 만났는데 ‘기죽지 말고 계속 가라’고 하시더라. 실의에 빠진 산악인들이 기운을 차리고 떨쳐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영주 기자

◆알파인 스타일 등반=유럽 알프스의 등반 스타일을 히말라야에 적용한 등반 방식이다. 소수의 등반대가 셰르파(산악가이드)의 도움 없이 중간캠프나 고정로프를 사용하지 않고, 산소기구를 사용하지 않은 채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정상까지 단번에 오르는 등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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