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율고 전환 첫해 미달사태 극복한 용문고

중앙일보

입력

이홍근·신혁민·함호준·최규민(왼쪽부터)군과 조은일(여)·앤드류 젤러 교사가 실용영어 회화 수업에서 진행하는 미니드라마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엔 다들 불안해했어요. 부모님도 전학을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죠. 그런데 학급당 20명밖에 안 되니까 수업에 더 집중할 수 있고, 1대 1 과외를 하는 기분이에요.” 허종철(서울 용문고 1)군은 고교 입학 당시 서울 지역자율형사립고(이하 자율고)가 지원 미달 사태를 겪으면서 밤잠을 설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허군은 “전학 가지 않기를 잘했다”며 “6개월 만에 L3에서 L1반으로 올라갈 정도로 성적이 향상됐다”고 좋아했다.

 서울 용문고는 지난해 말 2011학년도 자율고 원서접수 마감결과 지원경쟁률이 0.37:1에 그쳤던 기피학교 중 하나였다. 그러나 허군을 비롯한 1학년 학생들은 “오히려 그런 위기가 기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예기치 않게 학생 수가 줄면서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높아지고 진학상담이 수시로 이뤄져 학교 분위기가 활기차졌다는 것이다.

 용문고 1학년 학생들은 L1~L4까지 수준별로 반편성이 돼있다. 1년에 4차례 중간/기말고사를 기준으로 평균성적에 따라 반편성을 한다. 학업동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다.

 용문고 서진택 교장은 “변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돌아봤다. 자율고로 전환하기 전엔 지원경쟁률이 4대 1일 정도로 지역에선 인기학교였다. 지난해 대학 4년제 진학률도 43.5%에 이를 정도로 우수한 편이었다. 그러나 학부모·학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학부모·학생들이 자율고에 원하는 특화된 교육프로그램 준비가 부족했다는 내부평가가 이어졌다. 용문고는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기 시작했다. 개편 방향은변화된 대학입시에 맞춰 진로·적성을 계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모아졌다.

 1학년 함호준군은 “입학 전 한 달 동안 진행했던 윈터스쿨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고교수업을 체험하고 입학 전 부족한 교과목을 보충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홍근군은 “수업 대부분이 발표·토론 형식”이라며 “실용영어회화 수업이 인기”라고 말했다. 실용영어 회화수업은 이 학교 특성화 수업 중 하나다. 특정 상황을 재현하고 경험하면서 영어회화를 익히는 체험형 수업이다. 이번 학기 주제는 미니드라마제작. 팀별로 학생들이 손수 콘티를 짜고 대본을 작성해 캠코더로 촬영까지 한다. 황진호 영어과 부장교사는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말하기·쓰기 교육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영어어휘·독서인증제가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3년간 7000개의 영어어휘와 50권의 영어도서를 의무적으로 학습해야 한다. 영어어휘·독서인증제로 기본실력을 쌓은 뒤 3학년에 올라가면 에세이작성 수업을 듣는다. 황 교사는 “영어독서인증제는 미국대학입시과정에서도 인정해주는 미국 유명 출판사의 인증제도를 도입한 것”이라며 “해외대학 준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R&E(Research&Education) 수업도 학생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학과 같은 외부기관과 연계해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는 프로젝트 수업이다. 서울대 사범대와 협력해 용문고 1·2학년 15명이 참가하고 있다. 과학고·과학중점 학교에선 일반화됐지만 자율고에선 흔치 않은 사례다. R&E수업에 참여 중인 1학년 신혁민군은 “화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R&E수업이 적성을 계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했다. 이종락 진로상담부장은 “R&E 수업 외에도 우주항공·바이오·나노와 같은 과학전문교과를 방과후 수업에 개설할 계획”이라며 “동아리·방과후활동과 연계해 진로·적성을 계발하도록 자연계 학생들의 학습 로드맵을 짰다”고 말했다.

 용문고 1학년 학생들은 모두 자기 발전 멘토링 기록장을 갖고 있다. 일·주·월 단위로 담임교사로부터 학습계획을 점검받고 진학상담내용을 기록한다. 자치·자율·동아리 활동과 같은 체험활동도 상세하게 메모한다. 허군은 “학교에서 한 달에 2번꼴로 주최하는 명사초청특강에서 만났던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박기태단장이 기억에 남는다”며 “이런 경험들을 빼놓지 않고 꼼꼼히 기록한다”고 말했다.

 서 교장은 “자율고 정책의 성공 여부는 학교의 적극적인 변화 의지에 달렸다”며 “앞으로 진로·적성 계발 프로그램을 더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사진="김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