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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나는 산타클로스다’ 경연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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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고대훈
논설위원

지난 주말 서울대를 찾았다. 이 학교 학생들이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창작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다는 소식에 일부러 발길을 재촉했다.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권력을 젊은 층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200석 규모의 소박한 공연장에는 관객이 꽉 들어찼다. 뮤지컬은 현직 대통령이 대학 시절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사라졌다’는 상황 설정에서 모티브를 뽑아냈다. 이후 벌어지는 권력 암투와 그 속에 담긴 사랑과 우정, 리더십의 의미를 던졌다.

 1980년대 학생운동, 대통령 후보의 네거티브 유세전, 포장마차에서 토해내는 서민의 고충은 젊은이들의 문제의식을 엿보게 했다. ‘무능한 정치는 원치 않아/뻔뻔한 거짓말 원치 않아…’라고 코러스 합창했다. 87년 이한열 사망사건과 6월 항쟁의 흑백 화면을 보여줄 땐 민주화 시대를 이끈 앞선 세대의 공을 인정하는 듯했다.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간디, 사형을 선고받고도 공부를 쉬지 않았던 레닌, 위대한 대통령이 된 링컨’을 지도자 상(像)으로 추구했다. 대립과 선동이 아닌 융화와 배려의 지도자가 국민 추앙을 받는다는 피날레로 마무리했다.

 정치 권력이라는 진부한 소재에 음악·노래·춤을 버무린 발상은 신선했다. 젊은 층이 괴담에 휘둘리며 기성 세대를 조롱하고 있으리라는 예단은 섣불렀다. 다양한 전공의 재학생 20여 명이 펼친 연기는 이념과 흑백 논리와 거리가 멀었다. 공연장에서 만난 음악감독 최우정 교수는 “리더십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면 세상은 참 아름다울 것”이라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리더십을 예술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층의 신념을 지켜본 한 시간 반은 그래서 행복했다.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깔린 캠퍼스로 나오자 답답해졌다. 조금 전 만난 젊은 세대가 훗날 져야 할 짐을 알기에 미안했다. 90년대 중반 파리특파원 시절 목격한 유럽은 오늘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서유럽은 복지의 단맛에 빠져 있었다. 정년퇴직 후 봉급의 최고 80%까지 받는 연금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과부 수당 등 온갖 복지제도가 완벽하게 갖춰진 ‘꿈의 국가’였다. 프랑스를 비롯해 대학 등록금은 공짜였고, 사실상 무상의료에 가까웠다. 그러나 당시 실업률 20%대를 넘나드는 청년백수 문제, 침체기에 접어든 경기, 과잉복지의 병폐가 곪고 있었지만 모두 외면했다. 최근 터진 그리스·이탈리아 사태는 재앙의 전주곡이다. 최대 피해자는 유럽의 젊은이들이다. 누려보지도 못한 복지의 저주를 떠안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파격 행보가 떠올랐다. 무상급식을 확대하고, 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싹뚝 잘라주고, 기업 협찬을 얻어 서민에게 나눠주는 선물 보따리를 풀고 있다. 흔적이라도 남는 ‘토건’은 무조건 부정의 대상이 됐고, 정체조차 희미한 복지는 그의 심벌이 됐다. 산타클로스가 따로 없다. 그러면서도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빚은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조랑말과 코끼리가 이끄는 쌍두마차에 비유된다. 인간이 합리적일 듯 보이지만 코끼리의 감정에 지배당할 때가 더 많다고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저마다 ‘나는 산타클로스다’를 외치고 있다. 세금으로 메워야 할 ‘복지종합선물세트’를 둘러메고서 말이다. ‘크레타섬에서는 모두 거짓말을 하니 거짓말을 해야 참말이 된다’는 크레타의 역설이 판칠 것이다. 냉혹한 현실에는 눈감고 희망만 떠벌리는 리더는 사이비 교주가 되기 십상이다. 코끼리의 감정을 이용하려는 수작을 경계해야 한다. 뮤지컬 ‘대통령…’는 권력을 칼에 비유했다. ‘칼에 욕심과 거짓이 묻어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면서.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