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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북소리와 낭만·모더니즘… 음악의 모든 장르서 빛난 재주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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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호 27면

프로코피예프는 6살에 체스를 배워 음악과 함께 일생 동안 열중했으며 세계 챔피언과 겨룰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갈 수 없는 나라가 있다. 남성 듀오 해바라기가 불렀던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 ‘정의 없는 마음에 몸 바쳐 쓰러진 너. 너의 작은 속 그러나 큰 슬픔.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 그러나 그곳은 갈 수 없는 마음. 네가 가버린, 갈 수 없는 나라…’.

詩人의 음악 읽기 프로코피예프

갈 수 없는 나라 가운데 소련이 있다. 나라 자체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노랫말처럼 ‘맑은 햇빛과… 사랑과 평화’가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큰 슬픔’과 더불어 ‘몸 바쳐 쓰러진’ 예술가는 아주 많았던 곳이다. 인류가 꿈꿔왔던 아주 다른 세상을 총체적으로 실험해 봤던 나라. 사상으로 무장된, 개조된 인간형을 인위적으로 만들고자 했던 나라.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라고 했던 스탈린의 나라. 거기에 존재했던 예술과 음악인으로 쇼스타코비치가 우선 떠오르지만 다른 이름들도 있다. 하차투리안, 미야스콥스키, 카발렙스키… 모두가 희대의 검열자 안드레이 즈다노프에게 자아비판을 강요당했던, 그러나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자기 개성을 끼워 넣고자 애를 쓴 작곡가들이다. 거역할 수 없는 대의명분인 인민성과 지극히 사사로운 상상력 간의 고군분투가 그들의 작품 안에 담겨 있다.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시대를 등치시켜 떠올린다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작곡가가 있다. 통상 어린이를 위한 표제음악 ‘피터와 늑대’로 기억되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그 이름이다. 쇼스타코비치가 평생 소련 땅을 떠나지 않았던데 비해 프로코피예프는 혁명 이듬해인 1918년 조국을 떠나 파리·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근 20년 세월을 서방권에서 맴돌았다. 희귀하게도 그는 철의 장막을 찾아 제 발로 되돌아갔다. 돌아간 조국에서 ‘국민예술가’ 칭호도 받고 스탈린상도 수상했지만 만년에는 그 역시 상투적인 사유로 자아비판에 내몰려야 했다. 형식주의자라는 전가의 보도를 그 또한 피할 수 없었다. 1953년, 뇌출혈로 인한 그의 죽음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고 전기는 전한다. 하필이면 스탈린이 죽은 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소련·스탈린·사회주의·혁명 등의 단어들과 잘 어울리는 관계였을까.

프로코피예프는 일종의 재주꾼 타입이 아닌가 싶다.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진 다작의 작곡가다. 성격상 결함이 많았던 모양으로, 쇼스타코비치나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 등이 남긴 회상에는 악담이 가득하다.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어딘가 기분 나쁘게 멋 부리는 유형이라는 것. 나는 그런 성격도 예술가의 특권이자 자질이라고 믿는 터라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의 음악 속에는 혁명조국의 북소리가 있고, 클래식 음악사를 관통하는 낭만주의가 있고 또한 지극히 서방적인 모더니즘이 있다. 혁명 북소리 음악의 전형으로 거론되는 오페라 ‘전쟁과 평화’나 칸타타 ‘평화의 수호’ 등은 듣기 괴롭다. 하지만 딱 한 작품 칸타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만은 예외적으로 보아야 한다. 원래 영화 사운드 트랙으로 쓰여진 이 곡은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냥 최고다. 비장하면서 굴곡이 심하면서 섬세하고 강렬한 합창곡이다. 좋은 소련이 있다면 바로 이 곡 같은 것이 아닐까.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미셸 베로프. 프로코피예프의 협주곡을 환상적으로 연주했다.

하지만 근현대 음악의 족보에 그의 자리를 뚜렷이 새겨놓은 걸작들은 단연 피아노 곡들이다. 아무리 관현악 모음곡 ‘키제중위’, 일곱 곡의 교향곡,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 ‘신데렐라’ 등이 인기 레퍼토리여도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를 능가할 수는 없다. 한때 미셸 베로프가 연주한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은 베토벤·바르토크의 곡과 더불어 궁극의 음악이라고 외치고 다닌 적도 있다. 바르토크와 달리 그에게는 선율적 자질이 두드러진 것 같다. 듣는 이의 머리채를 쥐고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고나 할까. 우선 제 3번을 들어볼 일이다.

피아노 협주곡이 비교적 듣기 쉬운 반면에 음악성으로 더 높이 평가 받는 작품은 소나타들이다. 특히 전쟁 소나타라고 묶어 부르는 제 6번, 7번, 8번은 음악사적으로도 새로움과 창조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간 작품이라고 평가된다. 연주자들이 스크리야빈의 피아노곡을 두고 정신병자가 만든 작품이라고 고개를 젓는다는데 그런 성향에다 아주 맛깔나는 소스를 넣어 조금 먹기 편하게 반죽한 요리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라고 비유하고 싶다. 긴장감과 재치 있는 도약 사이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곡들이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 두 사람은 같은 체제에서 동시대를 살았지만 무척 다른 인간형이다. 고뇌와 고뇌로부터 뛰쳐나온 발랄함. 시대가 흐르고 흘러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음악을 편하게 즐기지만 가끔씩은 상기해 보아야 한다. 그들을 짓눌렀던 시대의 무게. 하지만 그 덕에 타올랐던 치열한 창조성을. 서방 특히 미국음악은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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