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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연금 이혼’시대 … 변호사 사무실 찾는 주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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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에 사는 주부 박모(58)씨는 이혼하기로 마음먹고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남편(61·공무원)의 폭언에 지친 박씨는 몇 년 전부터 이혼을 고민했지만 망설여왔다. 남편이 주식 투자로 재산을 탕진해 이혼하더라도 나눌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은 재산이라고는 공무원연금(퇴직연금)뿐. 박씨는 변호사에게 “내년부터 남편 앞으로 매달 200만원의 연금이 나올 예정인데, 이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아 머지않아 이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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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대법관 후보

8월 서울가정법원의 공무원연금 분할(分割) 판결이 나온 뒤 황혼이혼을 고민하는 50~60대 부부들에게 ‘연금 분할’이 변수로 떠올랐다. 이혼 후 마땅한 생계 대책이 없던 주부들은 희망 섞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남편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이혼 전문 김수진 변호사는 “법원 판결 이후 주부들은 기대를 하며 상담을 하고, 남편들은 ‘연금을 떼줘야 한다면 이혼을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공무원·군인·사립학교교직원 연금과 직장인의 퇴직연금은 이혼 후 분할 대상이 아니었다. 한 번에 받는 퇴직금과 달리 연금은 사망할 때까지 얼마나 받을지 총액을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올 8월 서울가정법원이 종전 판례를 뒤집었고 양측이 항소를 포기하는 바람에 확정됐다. 당시 가정법원은 퇴직공무원 남편 박모(57)씨에게 “아내 이모(54)씨에게 연금의 40%(70만원)를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아내 측 소송대리인은 ‘싱글맘’ 박보영 변호사로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로 제청했다. 박 후보자는 “연금을 일시불로 받을지, 연금 형태로 받을지가 분할의 관건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을 모델로 만들어진 사학연금·군인연금도 향후 이번판결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연금은 ‘연금 이혼’을 시행하고 있다. 올 9월 말 현재 5679명이 연금을 나눴다. 황혼이혼이 늘면서 연금 분할도 크게 늘어 2005년(820명)에 비해 7배 가까이 증가했다. 분할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화성시 김명호(63·가명)씨는 1988년부터 별거해 오다 지난해 9월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부모 이혼이 딸 결혼에 지장을 줄 것 같아 서류 정리를 미뤘다. 아파트를 전처에게 주고 빈손으로 나온 뒤 노동일과 택시운전을 하면서 98년부터 연금보험료를 부었다. 그런데 올 6월부터 전처에게 연금의 절반(약 9만원)을 떼주고 있다. 김씨는 “같이 벌어서 보험료를 낸 것도 아닌데 왜 나눠줘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반면 집이나 농지를 담보로 매달 일정액을 연금처럼 받는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은 이혼하더라도 받던 연금을 나누지 않는다. 연금은 소유자에게만 지급된다. 지난해부터 모든 사업장에 의무화된 퇴직연금도 마찬가지다.

박수련 기자

◆분할연금=이혼 후 연금을 나누는 제도. 국민연금에만 있으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연금액 중 혼인기간 금액을 산출해 절반씩 나눈다. 두 사람 다 60세가 돼야 한다. 분할연금을 받는 사람의 87%가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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