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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38) 일본 ‘아줌마 공무원’ 고구레 마코토의 대구 팔공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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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갓바위 돌부처님에게 열심히 빌면 일생에 한 가지 소원이 이뤄진단다. 나는 소원을 두 개나 빌었다.

가파른 돌계단 오르고 또 오르고

처음엔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한국을 찾았지만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국의 또 다른 매력을 알 수 있었다. 언어는 다르지만 한국은 일본과 공통점이 많다. 일본이 이미 잃어버린 옛 시절의 흔적도 한국엔 남아 있다. 나는 지역 관광과 향토 음식 즐기기는 기본이고, 뮤지컬과 영화를 보고 찜질방에서 땀도 빼며 한국을 즐긴다.

 나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5회 넘게 한국에 왔고 9개 도시를 둘러봤다. 여행하며 만난 한국인들과는 그사이 막역한 친구가 됐다. 한국을 드나들며 정말 많은 추억이 쌓였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올 봄 대구 여행을 소개한다.

 올 1월 대구 토박이 친구의 안내로 처음 대구에 갔다. 친구가 곳곳을 구경시켜주었지만, 두 가지를 실현하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섰다. 하나는 팔공산 갓바위에서 돌부처님을 참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구 명물인 돼지막창 먹기였다. 그런데 5월 다시 대구로 뮤지컬을 보러 갈 일이 생겼다. 드디어 못다 이룬 꿈을 이룰 기회가 생긴 것이다.

 오전 9시 서울발 KTX를 타고 1시간 45분 걸려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50분쯤 달려 팔공산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산기슭 식당에 들어섰다. 날씨가 무척 더워 올해 처음으로 콩국수를 주문했다. 그저 그런 관광지 식당이려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첫술을 떴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콩국이 진하고 면이 부드러워 젓가락질을 멈출 새가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행복한 기분이 돼 이 가게에 짐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팔공산 중턱 갓바위를 목표로 산행에 돌입했다.

 신록 사이로 발그레한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다. 화창한 일요일이라 관광객도 많았다. 하나같이 바람막이 점퍼와 등산배낭 등 전문 산악인처럼 채비를 갖췄다. 나는 양복 차림에 숄더백 하나가 전부였다. 인터넷 여행 정보에는 갓바위까지 도보로 편도 1시간이라고 돼 있었지만 가파른 비탈길과 울퉁불퉁한 바위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갓바위로 가는 길은 가벼운 하이킹이나 트레킹이 아니라 완벽한 등산 코스였다.

 아무리 등산 복장을 잘 갖춰도 지치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피로가 최고조에 달할 무렵 여기저기서 경상도 억양에 실린 “힘들어” 타령이 들려왔다. 산 아래 경치를 굽어보니 꽤 올라온 것 같은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 생지옥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 땀범벅이 돼 1시간쯤 올랐을까. 구세주 같은 문구가 보였다. ‘경상도 갓바위입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갓바위는 넓은 원반 모양의 돌갓을 쓴 돌부처다. 이 부처님한테 열심히 빌면 일생에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빌고 있었다. 나는 고생한 본전을 뽑자는 생각에 욕심을 부려 소원을 두 개나 빌었다. 놀랍게도 그중 하나가 얼마 전에 이뤄졌다. 또 하나는 잘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갓바위 덕을 굉장히 봤다고 실감하는 중이다.

 하산하는 길도 어김없이 바위가 덜컹거리는 급경사의 계단이었다. 조심조심 산기슭까지 다다라 콩국수를 먹은 식당으로 짐을 찾으러 갔다. 파전을 부치던 주인 아주머니가 “돌아오셨네요!”라고 반기며 무사히 살아온 걸 기뻐해주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캔맥주를 들이켰다. 승객들이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당황해 캔을 수건으로 감쌌지만 갈증이 싹 가시며 속이 후련해졌다. 조금 싱거운 한국 맥주도 이럴 때는 맛이 끝내준다.

산행 뒤 먹은 돼지막창 잊을 수 없어

그날 밤 뮤지컬을 보고 결국 돼지막창을 먹으러 갔다. 오후 11시가 다 되었지만 대구 명물을 놓칠 수 없었다. 함께 뮤지컬을 본 대구 친구와 막창집이 많이 모인 대구오페라하우스 근처로 갔다. ‘2학년 1반’이란 재미있는 이름의 가게를 골랐는데, 막창이 입에 안 맞을지도 모른다며 친구가 삼겹살도 함께 주문해줬다. 고구마와 떡, 양파와 함께 아주 살짝 맵게 양념한 막창은 둥글게 토막 난 생김새가 가마보코(일본 어묵) 같았다. 탄력이 있어 씹는 맛이 좋았고, 불에 그을린 부분이 특히 고소했다. 4개월 만에 재회한 친구와 신나게 잡담하다 보니 어느새 자정. 재회를 약속하며 부랴부랴 작별 인사를 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목적을 두 개나 달성한 두 번째 대구 여행이었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고구레 마코토(小暮眞琴·사진 오른쪽)

1961년 일본 출생. 일본에서 지방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몸은 일본에 있지만 일상은 한국 일색이다. 매일 한국 드라마와 뉴스를 보고 한국인 친구와 인터넷전화며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언젠가 장기 어학연수를 하리라 꿈꾸며 밤낮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이 살아가는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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