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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와 ‘공생발전’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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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은 자동차 등 대기업의 이익 감소를 감수하면서 취약한 축산농가와 제약산업의 이익을 보호. 주로 중소기업의 영역인 자동차부품은 원협정과 동일하게 발효 즉시 관세가 철폐되므로 중소기업에 큰 기회.”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국책연구기관과 함께 발표한 ‘한·미 FTA 추가협상 영향 분석’ 자료에 나오는 표현이다. 대기업의 이익 감소와 중소기업의 기회 요인을 대비시킨 문구가 정부 발표 자료에 버젓이 들어 있는 게 이례적이었다. 당사자인 자동차업계조차 한·미 FTA를 환영하는 마당에 정부는 왜 굳이 ‘대기업 이익 감소’를 적시했을까. 나중에 들어보니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표현이었다. 아마 올해 최고의 국정 기조로 격상된 공생(共生)발전에도 FTA가 부합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한·미 FTA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만 봐도 이게 꼭 간단하지 않다. 야당은 노무현 정부 때 찬성했던 ISD에 반대로 돌아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상황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반성과 사회안전망의 최종책임자로서 정부 역할이 커지는 분위기를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유통법·상생법이나 최근 국회에 발의된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 같은 한국의 정책이 ISD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스탠스가 좀 꼬여 있다. ‘개방과 경쟁’을 추구해 온 그간의 경제정책에 ‘공생’과 ‘동반성장’이 거칠게 끼어들면서 사안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FTA는 개방으로 시장의 경쟁 압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인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것도 국가의 일이다. 정부는 “유통법·상생법은 한·미 FTA뿐만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나 다른 FTA와의 불합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조정제도나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계 대형마트 등에 과도한 진입 규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합리적이고 균형 있게 이 제도를 운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운용의 묘’를 살리면 된다는 것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2일 본지 기고문에서 “우리가 정책을 투명하고 비차별적으로 집행한다면 ISD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가 올 초부터 물가와 동반성장 전선(戰線)에서 보여 준 시장과의 불협화음(不協和音)을 떠올리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정부는 유통업체 수수료율을 ‘알아서’ 낮추도록 하거나 정유사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기름값을 L당 100원씩 내리도록 했다. 물론 이런 조치가 곧바로 ISD 제소 대상이란 건 아니다. 정부와 시장 간의 소통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ISD를 남미 국가 얘기로만 간단히 치부해 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FTA와 공생발전 사이에서 우리 경제정책이 시험대에 올랐다.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