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수호·조흥동 한 무대 선다, 선동열·최동원이 맞붙는 셈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한국 춤의 최고수를 가리자-.

 조흥동(70)과 국수호(63). 둘은 한국 무용의 양대 산맥이다. 1990년대 이후 20여 년간 전통 춤판을 양분해 왔다. 강한 라이벌 의식 탓에 둘을 같은 무대에서 보기란, 사실상 언감생심이었다. 유일한 예외는 2007년이었다. 최승희와 함께 한국 신무용의 선구자인 조택원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에서다. 당시에도 분장실 사용, 공연 순서 등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20여 년간 팽팽히 맞서오던 둘이 함께 무대에 선다. 19일 서울 테헤란로 한국문화의집 코우스(KOUS)에서 열리는 ‘팔무전’에서다. 조흥동씨는 진쇠춤을, 국수호씨는 입춤을 춘다. 둘의 출격에 무용계는 잔뜩 기대하는 눈치다. “야구로 치면 선동열과 최동원의 맞대결이 성사된 셈”이라는 평가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둘은 본래 서라벌예대(현 중앙대) 선후배다. 국립무용단에서도 같이 활동했다. 막역했다고 한다. 조씨는 “국립무용단원 시절, 연습실을 몰래 빠져 나와 선술집에서 가락을 두드릴 때 가장 늦게까지 남은 건 국수호와 나였다”고 전한다. 둘 간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 90년대 초반이다. 후계 구도가 작용했다고들 한다. 당시 한국 무용의 대부는 고(故) 송범(1926∼2007)씨였다. 30년간 국립무용단을 이끌었다. 90년대 들어 30년 아성에도 균열이 일어났고, 누가 바통을 이어받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송씨는 주역을 더 많이 시키는 등 유독 청년 국수호를 예뻐했다. 당연히 송범의 적자로 국수호가 유력하게 점쳐졌다. 막상 뚜껑을 연 결과, 송범을 이은 2대 국립무용단장에 조씨가 전격 발탁됐다. “국씨로선 한방 먹은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절치부심한 국씨는 3년뒤 국립무용단장에 취임했다.

팔무전(八舞傳)

 ◆절대 미학 vs 드라마틱 남성미=조씨는 경기도 이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위로 누이만 넷이다. “부잣집 막내 외아들이 춤에 빠질 거라곤 아버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춤 욕심이 많았다. 김천흥으로부터 처용무와 춘앵무, 한영숙에게서 승무와 살풀이, 김백봉의 장검무 등을 배웠다. 궁중무용·교방계열·불교의식무용 등 종류는 다양했다. 오랜 기간 배운 스승만 17명이나 됐다. 전방위에 걸쳐 익힌 춤사위를 그는 몸 안에 녹여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춤사위를 가지고 있는 춤꾼’이란 표현 또한 과장이 아니다.

 국수호씨는 전주 농고를 나왔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원초적인 마력을 갖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열정적인 표현력으로 무대를 장악해갔다. 신인 국수호가 단박에 국립무용단 무용극 주인공으로 발탁될 수 있었던 이유다. 국씨의 능력은 특히 안무에서 빛났다. 마흔의 나이에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안무를 책임져 일약 ‘국가대표 안무가’로 성장했다. 스펙터클한 남성미·웅장함은 국수호 춤의 트레이드 마크다.

 ◆새로운 도약을 향해=조씨는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을 14년이나 했다. 말 많고 탈 많은 무용계에서 협회 수장을 이토록 오래 맡아 왔다는 건, 역설적으로 조씨의 온화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는 현재도 경기도립무용단을 11년째 이끌고 있다.

 국씨는 20대 후반부터 대학 강단에 섰다. 아카데미즘은 그의 작품 제작에도 투영된다. 어설픈 상상력이 아닌, 철저한 고증·세밀한 팩트 등을 무기로 동작을 짜 나갔다. 머리가 아닌 발품에 의해 만들어진 게 그의 대표작 ‘광개토대왕’ ‘명성황후’ 등이다.

 제도권내 최정상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 온 두 사람. 전격적인 합동 무대에 대해 국씨는 “침체된 한국 무용에 활력을”, 조씨는 “전통의 원형질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장인주 무용 칼럼니스트는 “두 거장의 동반 출연은 한국 무용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팔무전(八舞傳)=전통춤꾼 8명이 함께 모여 벌이는 춤판.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8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진옥섭 기획·연출. 다음은 올해 참가자들. 왼쪽부터 최선(호남 살풀이춤)·조흥동(진쇠춤)·이윤석(덧배기춤)·정재만(태평무)·임이조(한량무)·이흥구(무산향)·채상묵(승무)·국수호(입춤)씨. 19일 오후 4시·8시. 한국문화의집 코우스. 1만∼3만원. 02-3011-1720.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