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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병수의 희망이야기

고통은 선택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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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손병수
논설위원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일본이 배출한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자전적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서문에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마라토너들이 장거리를 뛰는 동안 자신을 질타하고 격려하기 위해 쓰는 만트라(mantra, 짧은 음절로 된 일종의 주문)라지요. 풀코스를 30회 이상 완주한 그는 이 말을 ‘마라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썼습니다.

 뉴욕에서 일하던 지난해 이 부분을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얼핏 ‘아픔’과 ‘고통’이란 우리말이 동의어 같아서 헷갈릴 수 있겠습니다. 하루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 되겠다’ 생각했다 치면, ‘힘들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이라는 것이지요. 더 쉽게 말하자면, 42.195㎞를 달리는데 다리 아프고 힘드는 건 당연하다. 다만 달릴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는 당신의 선택이라는 얘기겠지요. 우리 말에 ‘사서 고생한다’는 말처럼 마라톤은 그 고통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의 무대니까요.

 꼭 마라톤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없듯 누구나 마라토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라톤을 하지 않더라도 아픔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겪게 됩니다. 질병이나 사고는 물론 실연·실직·낙방·부도 등 너무나 다양한 형태로 다가옵니다. 실패든 실수든 피하고 싶어도 되풀이됩니다. 그때마다 ‘아 이젠 안 되겠다’고 주저앉을 수 있습니다. 나를 추월해 가는 모든 타인들과 세상을 원망하면서. 반대로 ‘아직은 아냐, 여기서 멈출 순 없다’며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비록 잠시 뒤처졌지만 다시 달릴 수 있습니다. 주저앉아서 원망만 하다 보면 마라톤이든 어떤 목표든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아픔을 무릅쓰고 선택하는 고통에 희망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요.

 하루키를 읽고 나서 뉴욕마라톤에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여름내 헬스클럽에서 연습량을 쌓은 후 10월부터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말 아침, 먼동이 터올 무렵 공원 순환도로에 들어섰을 때 깜짝 놀란 것은 주위에 가득한 한국 사람들이었습니다. 뉴욕 일원의 한인 마라톤 동호회원들이 백인 러너들 틈에서 무리를 이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식료품점과 세탁소, 식당 등 자영업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동포들이었습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뉴욕에서 극심한 불황과 싸우면서도 즐거이 달리는 고통을 선택한 그들과 함께 11월 첫째 일요일에 열린 지난해 뉴욕마라톤을 완주했습니다. 해마다 뉴욕마라톤과 같은 날 열리는 중앙마라톤이 이번 일요일로 다가왔습니다. 2만 명이 넘는 출전자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들이 기꺼이 선택한 고통에게도.

손병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