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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지주회사 SK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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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소유지배구조가 투명해진다. 한 계열사가 힘들어진다고 다 같이 넘어가는 일도 없다.”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이런 게 좋다는 것이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지난 정권 대기업 정책의 화두였다. 2003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끈 강철규 전 공정위원장은 임기 3년 내내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을 외쳤다. 법인세 혜택도 약속했다. SK그룹은 정부 말을 믿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2007년 7월이었다.

 4년여가 지난 지금, SK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족쇄입니다. 역차별이 너무 심해요.” 지난달 3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SK그룹에 50억여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유예 기간(4년)이 지나도록 SK증권을 매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년 7월까지 증권사를 매각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원래 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다. SK도 잘 알고 있었다. 현행 공정거래법도 그렇다. 그런데 매각을 알아보는 중 변수가 생겼다. 정부가 움직였다. 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만들었다. 금융지주사도 제조업 자회사를 거느릴 수 있게 됐으니 형평을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2009년 법안이 제출됐고, SK그룹은 기다렸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3년을 잠잘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반대 세력은 야당이다. “대기업 특혜”라는 것이다. 지난 정권 권력을 잡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라. 적극 지원하겠다”고 한 바로 그 세력이다. 그 사이에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폐지됐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대기업들은 아무 제재 없이 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법안이 잠을 자면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기업들만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SK그룹은 지난해 초 한 의료기기 인수전에서도 눈물을 삼켜야 했다. 지주회사 자회사 지분 보유 요건(비상장사 40% 이상)에 발목이 잡혀 물러선 것이다. “지주회사로 괜히 전환한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데드라인은 내년 7월. 이때까지 증권사를 못 팔면 SK그룹은 형사 고발된다. 팔자니 망설여진다. “마감이 있는 걸 아니까 다들 값을 후려치고···. 또 팔았는데 그 사이에 법이 통과되면···.” 기업의 최대 적이라는 ‘불확실성’. 그게 정부 뜻을 좇아 지주회사로 바꾼 SK그룹이 정부와 국회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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