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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의 비밀은 120여 가지 와인 섞는 멀티 빈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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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1 크루그 ‘끌로드메닐 1998’

“당신이 아주 착한 일을 했을 때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준 것에 비할 만한 샴페인이다.”

 영국의 일요신문 옵서버 기자 출신으로 저명한 음식·와인 평론가인 폴 레비가 한 말이다. 영국기자협회상을 2회나 받은 레비가 극찬한 이 샴페인은 지난 5월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의 결혼식 축하주로 쓰여 국내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바로 프랑스 브랜드 ‘크루그’. 167년 동안 ‘샴페인의 황제’로 군림해온 술이다. 가문의 전통을 이어 6대째 크루그를 이끌고 있는 최고경영자(CEO) 올리비에 크루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2 올리비에 크루그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사실을 알고 있나.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정 부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크루그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을 ‘크루기스트(Krugist)’라고 한다는데.

“우리가 붙인 이름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을 뿐이다. 우린 오히려 ‘크루그 러버(Krug Lover)’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아무튼 크루그 러버들은 매우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람들이다. 본인의 선택에 대해 자신감이 충만하며 유행을 좇지 않는다.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 가수 프린스와 마돈나 같은 사람들이 ‘크루그 러버’다.”

-여느 샴페인과 다른 대접을 받는 이유가 뭘까.

“우선 우리는 각종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거나 점수가 높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 동안 와인 평론가들은 크루그에 최고 점수를 줬다. 둘째, 창립자 요한 크루그가 ‘최고급 샴페인’이란 개념도 없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최상급 샴페인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워 ‘고급 샴페인의 선구자’로 시장 선도자가 됐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론 ‘멀티 빈티지’다. 120여 가지 와인을 섞어 크루그만의 관대함과 풍부함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인가.

“‘크루그 커미티’라 불리는 샴페인 전문가 여덟 명이 모여 그해 만든 300여 가지 와인 맛을 본 뒤 최종 조합을 선택한다. 매년 새롭게 말이다. 포도 수확이 끝나는 9월 말부터 다음해 3월까지 ‘크루그 커미티’ 구성원들이 모여 각 와인을 두세 번씩 ‘블라인드 테이스팅’한다. 그러니까 겨울에 먼저 맛을 보고, 보관 후 달라진 맛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해 봄에 다시 맛을 보는 것이다. 이때 포도가 재배된 곳의 특징이 잘 표현된 와인을 찾는데, 와인 특유의 개성과 존재감, 특히 신선함을 중점적으로 본다. 맛을 보면서도 우리는 항상 조합, 즉 ‘블렌딩’을 염두에 두고 나중에 이 퍼즐 조각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생각한다. 이 단계에서 300여 가지 후보 와인 중 절반 이상을 탈락시킨다. 매우 엄격한 과정을 거치는 셈인데, 그래서 크루그 샴페인이 희귀해져 가격이 높게 매겨진다.”

3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크루그 룸’에서 수석 주방장 우에 오포셴스키가 초콜릿으로 디저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4 홍콩 ‘크루그 룸’. 발이 쳐져 있는 창으로는 크루그 룸에 제공될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일정한 맛’을 유지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조합의 기본이 되는 ‘리저브 와인(Reserve Wine·오래 숙성된 와인을 뜻함)’ 비율이 약 50%이고 여기에 각각 다른 빈티지의 독특함이 어우러져 크루그만의 희귀성이 탄생한다. 우리는 12가지 빈티지를 아우르는 100여 종류의 와인을 보관 중이고 16년 전 빈티지 와인까지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각기 다른 상태의 포도를 수확하더라도 그 영향을 받지 않고 소비자에게 일관된 크루그의 맛을 전달할 수 있다. 더 특별하게 맛보고 싶다면 전 세계 4개 도시에 운영 중인 ‘크루그 룸’을 추천한다. 크루그만을 위해 존재하는 특급 식당이다.”

-그렇게 만들어 시장에서 반응이 시큰둥했던 적은 없었나.

“아니, 오히려 그와 반대다. ‘크루그 러버’들은 이를 두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다. 우리가 매년 한 해 동안의 날씨며, 포도 작황, 포도 맛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매년 이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루그 커미티’의 결정을 번복해본 적이 있나.

“한 종류의 포도만으로 만드는 ‘크루그 끌로드메닐’을 결정하던 때가 생각난다. ‘1999년 빈티지’로 계획하고 있었다. 저장고에서 11년이나 숙성했던 샴페인이고 라벨까지 모두 완성된 상태에서 ‘크루그 커미티’가 모여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그런데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출시하기엔 이르다’고 판단해 출시 자체를 취소해버렸다. 그래서 우리에게 ‘1999년 크루그 끌로드메닐 빈티지’는 없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샴페인 품질과 맛을 결정하는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승민 기자

크루그 룸=크루그 샴페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레스토랑. 홍콩, 일본 도쿄, 브라질 상파울루, 영국 런던 등 4개 도시 특급 호텔에 있다. 1개월 전 예약이 원칙인데 대개 두세 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크루그 쪽 설명에 따르면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내 크루그 룸에 한국인 손님이 가장 많다. 자리가 12개뿐인 홍콩 크루그 룸엔 2006년 5월 개점 이래 지금까지 7800여 명의 손님이 다녀갔고, 그동안 그들이 마신 크루그 샴페인은 4300여 병에 이른다. 크루그 룸엔 식사 메뉴가 따로 없다. 수석 주방장이 샴페인과의 조화를 고려한 정찬을 낸다. 전채부터 주요리·디저트까지 모두 크루그 샴페인이 제공된다. 크루그 샴페인을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식사 가격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1인분 100만원 정도가 최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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