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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이 제소한 ISD 모두 108건 … 승소 15건 패소 22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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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년 동안 같은 설명을 되풀이했는데 또 같은 질문이 나온다. 놀랍다.” 최근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와 관련한 논란을 두고 고려대 로스쿨 이재형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두고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된 ISD. 최근 인터넷 등에서 제기되는 대표적인 논란 여섯 가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답변을 들어봤다.

 Q : 우리 정부는 81개국과 투자 협정을 맺으면서 ISD를 채택했다. 하지만 미국과는 안 된다고 한다. ISD를 중재하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8명에 불과하지만 미국인은 130여 명에 달하기 때문에 영향력이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A : “ICSID는 재판소다. 편파적일 거라는 의심을 깔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분쟁이 나더라도 미국인들에게 재판받는 게 아니다. 우리도 중재인 한 명, 미국도 한 명을 지명하고 제3국의 중재인을 합의하에 지명하게 돼 있다.”(연세대 로스쿨 홍성필 교수)

 “ICSID에서 활약한 미국인이 많은 건 미국과 관련된 제소 건수가 많아서다. 사건마다 중재인을 한 명씩 지명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김영무 통상교섭본부 FTA정책국 심의관)

 Q : 미국 기업이 상대국 정부를 제소한 사례가 모두 108건인데, 이 가운데 패소한 건은 22건뿐이라고 한다. 다른 나라 정부들이 미국 기업을 당할 수가 없는 건가.

 A : “미국 기업이 패소한 건 22건(20.4%)이지만 승소한 건 15건(13.9%) 뿐이다. 나머지는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거나 제소를 취하하거나 각하된 사례다. 통계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용한 것이다.”(박태영 통상교섭본부 FTA이행과장)

 Q : 미국 기업들은 상습적으로 ISD 제소를 해서 한국 정부가 시달릴 거라는데.

 A : “ISD는 기업에도 굉장한 부담이다. 한 나라 정부를 제소하는 것이다. 상습적으로 할 수가 없다. 미국과 ISD 채택하지 않으면 미국 기업의 제소를 피할 수 있다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미국 기업들은 지금도 스위스·네덜란드 등 제3국 법인을 통해 다른 나라 정부를 제소하고 있다. 이미 81개국과 ISD를 채택한 우리나라로서는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서울대 로스쿨 신희택 교수)

 Q : 아르헨티나는 경제 위기 당시 정부가 취한 정책으로 무려 40여 건의 ISD 제소를 당했다는데.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외국 기업 무서워 아무 정책을 못 쓰게 되는 것 아닌가.

 A : “아르헨티나는 당시 많은 기업을 국유화했다. 외국 기업이 투자한 자산을 다 박탈한 것이다. 그럴 경우엔 보상을 해 주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기업이 당한 일이라고 생각해 보라.”(고려대 로스쿨 이재형 교수)

 Q : 멕시코는 감미료를 사용한 탄산 음료에 20%의 소비세를 부과했다가 미국의 음료 회사들로부터 제소당해 거액을 배상했다고 하고, 캐나다는 담뱃갑에 ‘순한 맛’ 표기를 금지하려다 미국 기업의 제소 위협에 정책을 철회했다고 하는데.

 A : “멕시코는 사탕수수 원산지라 설탕이 싸기 때문에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정책을 썼다. 차별 정책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는 제도는 해외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을 생각해서라도 꼭 있어야 한다. 캐나다 정부는 당시 ISD가 아닌 지적재산권 협약 때문에 정책을 철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 다시 같은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법무부 국제법무과 나욱진 검사)

 Q : ISD를 빼는 쪽으로 재재협상 하면 안 되나.

 A : “실익이 없다. 이미 문은 다 열려 있다. 일본·영국 등을 포함해 81개국과 이미 ISD를 채택했다. 주권 운운하는 논의가 답답하다. 우리는 중국·인도 같은 개발도상국과 투자협정 체결할 때는 ISD를 필수조건으로 요구한다. 그 나라에서 한국 투자자들이 입을 손실이 두려워서다. 그럼 우리가 중국·인도의 주권을 짓밟은 것인가.”(서울대 로스쿨 신희택 교수)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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