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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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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임종주
jTBC 사회2부 차장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바로 펄쩍 뛰쳐나오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데우면 자기가 삶기는 것도 모른 채 죽어간다.’ 위험이나 경고를 감지하지 못해 대형 사고나 재앙을 맞는 경우를 빗대 ‘모래 속에 머리만 처박는 타조’와 함께 종종 쓰는 표현이다. ‘개구리 효과’ ‘개구리 경영론’ ‘비전 상실 증후군’ 등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환경 재앙을 경고하기 위해 이 표현을 인용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갈등이 넉 달여 만에 또다시 불붙었다. 지난달 초 검찰이 수사권 조정 내용이 담긴 대통령령 1차 초안을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것이 발단이다. 양측은 경쟁적으로 안을 내놓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수사권 분쟁 2라운드의 핵심은 수사 지휘의 범위다. 검찰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진 경찰의 참고인 조사와 계좌추적, 압수수색을 수사로 간주해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전·현직 검사나 검찰 공무원에 대한 수사는 지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강경하게 맞서 있다.

 지난 6월 검경 갈등 당시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검찰의 수사 지휘권과 경찰의 수사 개시권을 모두 인정했다. 즉 모든 경찰 수사는 검찰의 지휘를 받되 경찰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식하면 수사를 개시, 진행해야 한다는 조항을 따로 뒀다. 그러면서 수사 지휘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2차 분란을 예고했다. 검찰과 경찰은 모두 국민 권익 신장과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약발’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국민의 불신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수사·조사 및 규제기관 13곳에 대해 청렴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검찰이 꼴찌, 경찰이 그 바로 위였다. 최근 금품수수와 관련해 경찰의 내사를 받은 현직 검사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했는가 하면,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재직 당시 고소인에게서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경찰은 어떤가. 장례식장 업주와 시신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데 이어 조직폭력배 난투극 현장에서 공포탄 한 발 못 쏘고 허위보고까지 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양쪽 모두 서로에게 더 큰 흠집을 내기 위해 비리 캐기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더니 앞에서 얘기한 각종 의혹도 이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오십보백보’라는 맹자의 가르침이 딱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내년 1월 1일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을 앞두고 대통령령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느 쪽도 물러설 기색이 없다. ‘치킨 게임’이라도 해보겠다는 기세다. 국민은 이미 여러 차례 경찰과 검찰에 대해 경고음을 보냈다. 물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다. 저 죽는 줄도 모르고 냄비 속 패권(?)을 차지하겠다고 싸우는 개구리의 모습이 혹시 지금 검경의 처지가 아닌가.

임종주 jTBC 사회2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