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탄생은 시민운동에는 거대한 도전이다. 권력 감시의 최선봉에 섰던 인물이 감시의 대상이 됐다. 시민운동 세력이 새 시장에 대한 감시의 끈을 느슨하게 하면 시민운동은 위기에 빠진다. 더 강하게 비판하고 수준 높은 감시 역량을 보여주어야 시민운동이 올바로 설 수 있다.”
2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항동 연구실에서 만난 조희연(55) 성공회대 NGO대학원장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이 한국 사회에 의미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1956년생 동갑내기인 조 원장과 박 시장은 1994년 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만나 17년간 함께 시민운동을 해 왔다. 박 시장은 2002년 참여연대를 떠났지만 조 교수는 참여연대에 남아 현재는 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서로 너무 잘 안다. 그런 조 교수가 “박원순 시장의 등장은 시민운동 진영의 위기 혹은 새로운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시민운동의 승리라고 할 시점에서 시민운동의 위기를 내세우는 이유는.
“시민운동의 대표 아이콘으로 권력 감시 운동의 대표주자였던 박 시장이 감시 대상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현상이고, 한국 시민단체가 처한 새로운 현실이다. 시민운동세력은 박 시장의 배출을 자축만 할 수 없다. 수준 높은 감시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신뢰를 얻는다. 박 시장의 등장으로 시민운동이 언젠가는 정치화할 수 있는 세력으로 보이게 됐다. 앞으로 더욱 엄격하게 선을 그어야 하는 이유다.”
-서울시에 시민운동 진영 인사들이 대거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시민운동 엘리트가 정치 엘리트로 유입되는 것은 한국적 특성이다. 다만 앞으로 시민운동 종사자들은 진로를 선택해야 한다. 이들은 박원순의 서울시에 유입될 것이고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추가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건 좋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가장 소중한 미덕은 여전히 정당 및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다. 시민단체에 남을 사람은 한눈 팔지 말아야 한다.”
-시민단체의 역량 약화를 우려하나.
“역량은 곧 고갈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시민단체 인재들이 정치로 투입됐다. 저수지가 고갈하면 시민운동은 몰락한다.”
-시민운동의 정치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경계가 모호하다.
“시민운동은 운동의 진정성을 믿어주는 시민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모든 형태의 권력은 부패할 수 있다. 그래서 권력은 ‘시어머니’가 필요하다. 과거의 박원순을 알기에 난 그의 순수성을 믿는다. 그의 지난 행보들이 마치 정치 진출을 하기 위한 기반 닦기였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난 MB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에게 닥친 개인적인 상황이 그를 정치 참여로 이끌었다고 본다.”
-정치인 박원순의 등장으로 변한 것은 무엇인가.
“지금은 정치 불신이 크다. 세계적 신자유주의적 흐름에서 젊은 세대와 자영업자, 비정규직 등 피해집단이 나왔다.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시대의 흐름이 있었다. 한국에선 정치에 대한 ‘열광과 좌절의 사이클’이 반복된다. 참여정부 등 과거 여당 때도 늘 ‘인물이 없다’는 탄식을 했다. 정당이 해결할 수 있는 폭이 제한적이라서 그렇다. 때문에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두는 잠재적 정치 엘리트들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박원순 시장의 당선도, 안철수 교수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울시는 어디로 가야 하나.
“박 시장의 장점인 가진 자들의 선의와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야 한다. 박 시장은 ‘미다스의 손’을 갖고 있다. 의제 가공 능력이 탁월하다. 그가 ‘타워크레인에서 농성하는 김진숙의 좌절과 분노의 정치’와 ‘안철수의 공감의 정치’를 잘 결합해 주길 바란다.”
-참여연대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가장 무섭고, 매서운 시어머니가 될 것이다. 서울시정을 감시하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고민은 이미 내부에서 진행 중이다.”
글=전영선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조희연(55)=참여연대 창립 멤버로 활동한 시민운동 그룹의 대표적 학자다. 전북 정읍 출신으로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한국 사회운동조직에 관한 연구’다. 저서로 『한국사회구성체논쟁(공저)』 『NGO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