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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신라금관세트의 `화려한 첫 외출` 뒤엔 … 금연각서가 있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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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국보 외출행렬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천마총금관이다. 가장 장식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 금관은 빛을 본지 38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 경주 고분 155호로 불리던 것을 1973년 금관, 팔찌 등 많은 유물과 함께 천마도가 발견된 천마총에서 발굴한 것이다. 당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 신라의 왕인 마립간이 쓰던 것으로 추정되나 주인이 분명치 않다. 왕이 재위 기간 중 쓴 왕관이 아니라 왕이 죽은 뒤 1년간 만들어 왕의 무덤에 함께 묻었다.

천마총금관은 높이 32.5㎝의 전형적인 신라 금관으로 왕이 쓴 채로 발견됐다. 머리 위에 두르는 넓은 띠 앞면 위에는 산자형 모양이 3줄, 뒷면에는 사슴뿔 모양이 2줄 있는 형태다. 산자형은 4단을 이루며 끝은 모두 꽃봉오리 모양으로 돼 있다. 금관 전체에는 원형 금판과 굽은 옥을 달아 장식했고 금실을 꼬아 늘어뜨리고 금판 장식을 촘촘히 연결하기도 했다.

1500여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금제관식 3종 세트가 최근 시드니로 `화려한 외출`을 했다. 한국-호주 수교 50주년을 맞아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뮤지엄에서 지난달 28일부터 열린 `금속공예전` 전시에 맞춰서다.

이번에 엄선된 문화재는 천마총 금관(국보 188호), 금제 허리띠(국보 190호), 금제관식(보물 618호) 등 천마총에서 발견된 금관일체다. 여기에 신라금제여래좌상(국보 79호), 백제 무령왕비 금목걸이(국보 158호) 등 우리나라 금속공예 142점이 추가됐다. 당시 마립간의 세력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웅장하다. 국보급 문화재가 한꺼번에 국외로 반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보 190호인 금제 허리띠는 과대란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 금속판을 붙인 허리띠로 길이 125cm, 요패의 길이는 73.5cm다. 이 허리띠는 실제 왕의 허리에 착용된 상태로 발견됐다.

금관의 첫 국외 여행은 기획에서부터 호송에 이르기까지 `007작전`을 방불케 했다.

금관은 외박 허가를 받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출토된 금관(金冠)은 지금까지 모두 10여 점. 그 중 한국에서 출토된 것이 8점일 정도로 진귀한 세계적인 보물이다.

이 전시를 성사시킨 주역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민병찬 과장, 호주 시드니 파워하우스뮤지엄 김민정(42·여) 큐레이터다. 호주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교포 출신 김씨가 전시를 요청했다. 민 과장이 난색을 표했지만 한·호주 수교 50주년이란 호재가 작용해 정부의 허락이 떨어졌다. 한국의 미를 각인시키기 위해 아예 금관 3종 세트를 모두 전시하기로 했다.

한눈에 레드 카펫 드레스에 어울릴 듯한 화려한 스와로브스키 목걸이를 연상케 하는 보물 618호 금제관식은 큰 새의 날개가 펼쳐 있는 모양이다. 천마총 안의 관(棺) 머리쪽에 있던 유물 보관함에서 발견됐다. 몸체와 좌우의 날개에는 덩굴무늬를 파 놓았는데, 가장자리의 테두리와 줄기부분에는 세밀하게 점선을 찍어, 얇고 긴 금판이 힘을 받도록 했다. 표면 전면에는 지름 0.7㎝정도의 원판을 400여 개의 금실로 연결해 매우 화려하게 보인다.

하지만 엉뚱한 난재(?)에 부닥쳤다. 금관 일체를 보관하고 있던 이영훈 경주국립박물관장이 반출에 조건을 내건 것. 그러면서 그는 금관을 나르는 후송원들의 흡연을 문제삼았다. "후송하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면 반출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완강했다. 이 관장은 얼마 전 담배를 끊은 뒤 금연전도사를 자처하던 터였다. 결국 이 관장을 설득하기 위해 한국측과 호주측 후송원들이 금연 각서를 썼다.

이후 국가원수급 국보 `의전`을 위해 박물관 직원들이 총출동해 지략을 짰다.

추락과 같은 유사시를 대비해 2개의 비행기에 나눠 싣기로 했다.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산성기가 없는 한지로 1차 포장을 하고 쿠션이 있는 오동나무 상자에 싼 후 알류미늄 상자에 넣었다. 이렇게 삼중 포장을 하는데만 박물관 인력 10명이 무려 5일을 보냈다.

귀하신 몸들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인천공항까지 진동이 없는 트레일러로 옮겨졌다. 관세청의 협조 하에 대한항공 보잉 747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엑스레이 검사, 세관검사, 입출국심사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서류로 대신했다.

문화재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행기 화물칸의 온도(25도)와 습도(40%)를 일정수준으로 유지했다. 10여 시간 8300㎞의 비행끝에 도착한 호주 박물관에서 이들은 24시간 수면상태로 보관된 후 포장을 해체했다. 1600살이 느낄 `시차`를 극복하기엔 짧은 휴식시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양성혁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는 금관 외출의 한 획을 긋는 큰 사건"이라며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금속공예의 시원, 황금에 담긴 지배계층의 위엄 등 한국 금속공예의 조형적 흐름을 한 자리에서 조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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