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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터무니없는 ISD 괴담으로 국민 현혹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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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또다시 괴담(怪談)이 떠돌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괴담이다. 특히 투자자 국가소송제(ISD) 관련 괴담이 상당수다.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된 주장인데도 현혹되는 사람들이 많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도 그러했다. 그때도 괴담이 난무했다. ‘미국인은 대부분 자국산 고기를 먹지 않는다’,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쇠고기는 다르다’, ‘라면 수프나 화장품·기저귀를 통해서도 광우병에 걸린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었는데도 일파만파로 번졌고, 사실이라 믿는 국민들이 많았다.

 이번 FTA 괴담도 마찬가지다. 거짓 주장과 헛소문인데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은 말할 것도 없고, 고위 공직자 출신과 국회의원, 학자 등 사리를 분별할 만한 사람도 적극 가담했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 한국의 역사와 문화는 없어진다”는 괴담도 있다. 미국 변호사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면 언행이 미국식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을사(乙巳)FTA란 말도 떠돈다. FTA를 체결하면 을사조약 때처럼 미국에 주권을 뺏기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은 잘못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황당한 주장도 있다. 공당(公黨)의 자료에 버젓이 실려 있는 내용이다. 우리 실정법을 어기면 우리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는 걸 모를 리 없는데도 그렇다. 사회보험은 ISD의 분쟁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귀가 따갑도록 설명해도 여전히 “미국 보험사가 한국 건강보험을 제소할 수 있다”고 우긴다. 눈과 귀를 꽉 닫고 있다는 방증이다. 반미(反美)나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익이 이들의 안중에 있을 턱이 없다.

 ISD는 한·미 FTA에만 있는 별종이 아니다. 우리의 사법적 주권을 미국에 몽땅 넘기는 독소조항은 더욱 아니다. 미국 투자자와 기업에만 유리한 것도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다.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현지에서 불이익을 당할 때 국제기구의 중재로 분쟁을 해결토록 한 제도다. 이게 없으면 투자자는 늘 불안하다. 그래서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세계 147개국이 ISD를 채택했다.

 우리나라도 이미 40여 년 전에 이 시스템을 받아들였다. 칠레, 싱가포르, 인도와 체결한 FTA에 모두 다 들어가 있다. FTA를 체결하지 않은 일본과 중국 등 81개의 투자협정에도 포함돼 있다. 이뿐 아니다. 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한 정당한 공공정책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제투자분쟁에서 미국이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인이 한국에 투자한 것보다 우리가 미국에 투자한 게 더 많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더 이득이다.

 ISD로 인한 피소(被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건 물론 아니다. 다만 확률이 매우 낮다는 거다. 설령 일어난다고 해도 준비만 철저히 하면 겁낼 것이 없다. 차제에 우리의 제도나 정책 수준을 남에게 책 잡히지 않도록 선진화하면 된다. 혹여 있을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는 얘기다. ‘교통사고 날까 두려우니 운전하지 말자’는 식의 괴담에 이번만은 절대로 속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