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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수요지식과학] 3000㎞ 나는 철새에겐 ‘내비’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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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철원 민통선과 한강 하구에서 겨울 철새인 재두루미가 관찰되고 있다. 북녘 시베리아에서 3000㎞가 넘는 먼 길을 날아온 진객(珍客)이다. 동해안 하천에는 연어도 돌아오고 있다. 3~4년 동안 태평양 바닷속 수만㎞를 헤엄쳐다니다 태어난 곳을 찾아온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동물들이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 태양고도의 변화, 후각 등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지구 자기장(磁氣場·magnetic field)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야생동물이 어떻게 자기장을 이용하는지 들여다봤다.

지구 자기장은 지구 전체를 감싸는 자석의 힘을 말한다. 지구가 거대한 ‘막대자석’처럼 기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힘이 발생한다. 대체로 남극 부근에는 N극이, 북극 부근에 S극이 위치하고 있다. 손에 든 나침반의 N극이 북극(진북)이 아니라 자북(磁北)을 가리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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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대 지구물리학과 박용희 교수는 “지구 내부의 외핵에는 금속 성분이 액체 상태로 녹아있는데, 지구 자전으로 외핵이 회전할 때 철 성분이 따로 움직이면서 새로운 전류가 생기고 이것이 자기장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대자석처럼 지구 자력선의 방향도 남쪽의 N극에서 시작돼 북쪽의 S극으로 이어진다. 특히 자기의 방향은 위도에 따라 달라진다. 남극 부근에서는 위를 향하고, 적도 부근에서는 수평을 유지하고, 북극 부근에서는 아래를 향한다. 이러한 각도 차이를 복각(伏角·magnetic inclination)이라 한다.

 지구상의 위치에 따라 자기장 세기도 다르다. 결국 야생동물이 지구 자기장을 이용한다는 것은 복각과 자기장의 세기를 감지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장거리를 이동하는 새들은 눈과 연결된 ‘나침반’과 부리와 이어진 ‘지도’를 뇌 속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시베리아 등에서 내려와 철원평야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재두루미. [연합뉴스]

 철새들이 시각을 지구 자기장을 확인하는 나침반으로 활용하는 것은 망막의 신경세포에서 발견되는 ‘크립토크롬(cryptochrome)’이란 광(光)감지 단백질과 관련돼 있다. 크립토크롬은 빛의 변화, 또는 자기장의 변화에 따라 전자의 이동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두 가지 다른 상태로 존재한다. 두 가지 상태의 비율이 달라지면 이것이 뇌에 신호로 전달된다.

 실제로 2007년 독일 올덴부르크대학 연구팀은 망막 신경세포와 뇌 앞부분(클러스터 N)이 서로 연결돼 있고, 뇌 앞부분이 손상된 철새는 자기장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유전자에는 특정한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이동하도록 입력이 돼 있고, 새들이 눈으로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읽으며 그에 맞춰 날아가는 셈이다.

 새들의 ‘지도’는 위쪽 부리에 있는 자철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독일입자가속기연구소(DESY)의 연구팀은 지난해 X선 형광법으로 분석한 결과, 비둘기 윗부리의 500여 개의 수상돌기(樹狀突起·신경세포에서 뻗어나온 나뭇가지 모양의 돌기)에는 자성을 띠는 자철석이 붙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각각의 수상돌기와 자철석은 정해진 한 가지 방향의 자기장만을 감지해 신호를 증폭한 뒤 뇌로 전달하고, 머릿속에서는 개별 신호를 지도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녹음 테이프’처럼 지나온 길의 자기장 지도를 기억했다가 다음에 같은 길을 지나갈 때에는 자기장 지도와 대조하면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철새들이 ‘나침반’은 날 때부터 갖고 있지만 지도는 경험이 쌓여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역시 2007년 프린스턴대 연구팀과 2008년 러시아 동물학연구소 팀이 겨울 철새를 수천㎞ 동쪽으로 옮겨 풀어준 실험에서 확인됐다. 처음 비행하는 어린 새는 남쪽으로만 이동해 엉뚱한 곳에서 겨울을 났지만, 이동 경험이 있는 나이 든 철새는 방향을 서남쪽으로 수정해 원래의 월동지로 이동했다.

 연어의 경우는 먼 바다에서 모천(母川) 근처까지 올 때는 지구 자기장의 도움을 받지만, 마지막에는 후각을 활용해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생물들을 위협하는 요인이 하나 있다. 지구 자기장도 변한다는 사실이다. 박용희 교수는 “현재 자북이 알래스카 쪽에서 시베리아 방향으로 매년 50㎞씩 이동하고 있고, 반대쪽에서도 매년 10㎞씩 이동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자기장 방향이 바뀌면 동물들의 이동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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