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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영광굴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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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영남 청도에서 주홍색 감이 마을을 물들일 때가 되면, 전남 영광에선 만선 깃발을 올린 어선들이 법성포에 가득하다. 열흘 어획에 일년 생계가 달린 어부들에겐 칠산 앞바다를 찾아오는 조기 떼가 여간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뱃살 빛깔이 노란 참조기가 소금기 섞인 영광 한서풍에 말려진 것이 그 유명한 영광굴비다.

 그런데, 먼바다에서 잡혀 영광 덕장에서 말린 중국산 조기도 자주 영광굴비로 둔갑한다. 산란기 봄에 영광 해풍을 쐰 조기는 원산지를 불문하고 값이 십여 배나 뛰기 때문이다. 중국산인데 영광에서 출하된 굴비는 영광굴비일까? 더 애매하게는, 연평도산 조기를 영광에서 말리면 영광굴비인가? 애매하지만 요 정도는 우리의 귀여운 ‘애정남’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을 거다. 제일 튼실한 놈을 골라 찬물에 사나흘 불려보면 된다. 배에 노란빛이 여전하면 영광굴비다. 노란빛 없는 외국산을 가리는 간단한 방법인데, 소비자들은 그냥 먹는다. 굳이 그 비싼 놈을 버려가며 진짜를 가려낼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다.

 ‘서울공화국’의 수장이 된 박원순 시장, 서울시민이 구매한 이 권력을 영광굴비론에 대입하면 어떨까? 민속학자들은 요건 하나를 추가할 것이다. 칠산 앞바다 갯벌 냄새가 나야 한다. 연안 지역 어촌에서 흘려 보낸 서민들의 생활고에 전 갯벌 바닷물을 들이켜 여린 살을 짭짜름하게 만든 놈. 소설가라면 이런 걸 추가할 것이다. 고달픈 어부의 투망질에 스스로 제 몸을 던져 허기진 배를 채워주려는 놈. 박원순 시장의 시민권력은 과연 이런 것일까?

 박원순의 몸에 노란 빛깔을 얹은 것은 안철수였다. 박원순이 알몸을 보여주기도 전에 느닷없이 부각된 시대의 신데렐라 안철수가 자신에게 부여된 세간의 기대와 상징을 박원순의 몸에 문신했다. 안철수가 선사한 상징의 갑옷은 여전사 나경원이 쏘아댄 네거티브 화공(火攻)에 끄떡도 하지 않았다. 참조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참조기의 내장에서 갯벌 냄새가 나는지는 모를 일이다. 박원순이 소집한 시민권력의 속살은 진보정당과 진보세력의 연합체였다. 아름다운 재단·희망제작소가 진짜 ‘시민운동’에 걸맞은 박원순의 명패라면, 캠페인 내내 시민운동의 진짜 얼굴은 나경원의 맹공에 엉망이 되었다. 박원순의 몸은 진보 세력의 숙주가 되었는데, 안철수가 이것을 자신의 상징의 보따리로 치장해 신상품을 만들었다. 젊은 세대에게 절찬리에 팔려나간 상품이 이것이다.

 서울공화국을 다스릴 시민권력의 삼중구조가 만들어졌다. 박원순이란 인물, 그것에 깃든 진보 세력, 그리고 안철수의 상징권력. 그 복합체가 진정 시민권력인지는 ‘찬물에 한 열흘 불려봐야’ 알 것이지만, 집무 첫날 무상급식에 대한 주저 없는 결재로 반대쪽 시민의 의사는 하루아침에 묵살됐다. 위로의 말 한마디 했으면 좋았을 것을. 정치란 이런 것이다. 그게 진보든, 보수든, 패자의 공동묘지에서 승자의 투혼을 시민 전체의 이름으로 색칠하는 것. 박원순의 몸에 색깔을 입힌 안철수는 이런 것을 원했을까? 그가 박원순을 지목했을 때 이런 것을 예상했을까, 아니면, 그냥 해본 걸까?

 300여 명의 멘토 그룹이 있고, 책 1000여 권을 독파했다고 밝힌 안철수는 현실정치와 접목하는 순간 상징권력이 급속히 훼손된다는 그 운명적 딜레마쯤은 이미 터득했을 것이다. 그의 대중인기의 비결은 자신의 상징자원을 무균질의 장막으로 감싸는 전략, ‘신비 전략’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상징자원은 자신의 것만은 아니다. 좌절감에 휩싸인 젊은 세대들, 또는 기성정치에 식상한 중장년층이 자가발전한 희망의 시그널이 그의 주파수와 ‘우연히’ 일치한 결과인데, 그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청춘콘서트처럼 ‘살짝’ 화답하는 형식을 취했다. 한국정치의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대중적 심리에 안철수 무지개가 살짝 뜬 형상이다.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란 시민의 갈망적 호명에 자신의 존재와 실천 의지를 던져 응답하는 행위다. 고도가 되려는 행위다. 시골의사 박경철 뒤에, 멘토 그룹 속에, 서울대학교라는 치외법권 안에 은신하기엔 사태가 너무 진행되었다. ‘응징하겠다’는 그 원색적인 말, ‘상식이 이긴다’는 비상식적 말이 고도가 내놓을 처방적 개념인지 공론장에 나와 논쟁할 의무가 생겼다.

 그는 지난달 28일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직을 사임했다. 교수직과 대학원장직은 유지한 채로. 설립금 1500억원, 운영자금 매년 25억원을 지원한 경기도가 안 원장에게 감사 일정을 통보했는데, 사임이란 절묘한 방식으로 의무를 피했다. ‘학교 일도 벅차다’고 토로한 그가 학교에서 하는 일이 이렇다면, 박원순을 참조기로 만든 정치적 책임도 그렇게 비켜갈까? 새끼줄에 꿰여 먼바다가 아득해도 등 시린 어부의 시름 달랠 일 하나로 어망에 뛰어드는 게 진짜 영광굴비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