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대중가요로 만들어 부르는 현상은 청년문화 시대에 갑자기 폭증했다. 지난 회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식민지 시대에는 대중가요 가사가 시보다 그리 열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해방 후 시가 교과서와 문학전집을 통해 고상한 명작으로 평가되면서 시는 고급한 예술로, 대중가요는 그보다 수준이 낮은 오락으로 양분하는 인식이 뚜렷해져 갔다. 청년문화 시대, 포크 초기에 시를 노래로 부르는 시도가 늘어난 것은 바로 이런 기성 대중가요에 대한 반발이었다.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들은 예술적이고 고상한 노래를 만들어 부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청년문화 세대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33> 포크의 전성시대
꼭 포크 장르가 아니더라도 이 시기 젊은이들이 기존 대중가요와 다른 품격을 갈구하고 있었음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대중가요 가수인 문정선이 가곡 ‘보리밭’을 불러 크게 히트했고, 역시 스탠더드팝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정미조의 ‘개여울’도 크게 히트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 홀로 이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로 시작하는 ‘개여울’은 김소월의 시를 가사로 삼아 작곡한 노래다.청년문화 세대가 직접 작곡한 포크에서 이런 예는 더 많이 발견된다.
“하늘에 깔아논 /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 속삭이듯 서걱이는 /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 두 놈이 부리를 / 서로의 쭉지에 파묻고 /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 (하략)”(박남수<사진>의 ‘새’)
“새는 / 노래하는 줄도 모르면서 자꾸만 노래를 한다 / 새는 /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날아만 간다 / 먼 훗날 / 멀어도 아주 먼 옛날 내가 보았던 / 당신의 초롱한 눈망울을 닮았구나 / 당신의 닫혀 있는 마음을 닮았구나”(송창식의 ‘새는’, 1974, 송창식 작사·작곡)사진>
박남수의 대표작 ‘새’의 한 구절을 차용한 송창식의 ‘새는’은 1960년대 혹은 80년대라면 절대 히트할 수 없는 노래였다. 박자나 선율도 파격적이고 새의 비유를 쓰는 방식도 결코 익숙지 않은,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노래였다. 두 작품 모두에서 ‘새’는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상징이다. 노래인 줄도 모르고 노래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존재, 사랑인 줄도 모르고 둘이 부리를 비비지만 그래서 더욱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존재들이다. 박남수 시 구절마냥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 존재다.
박남수 ‘새’는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며 순수를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그것을 파괴해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냉철하게 형상화한다. 송창식의 ‘새는’은 이런 냉랭한 경고에까지 이르지는 않으나 그 새를 ‘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너무도 순수해 마음을 열 줄도 모르는 애인에 비유한다. 이 쉽지 않은 노래를, 포크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송창식이 아니면 감히 누가 부를 수 있을까 싶다.
가창력에서 포크 남자 가수의 전범이 된 것이 송창식이라면 여자 가수로는 양희은이다. 양희은은 ‘하늘’에서 시의 지고지순한 맑음을 목소리로 구현한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 여릿 여릿 멀리서 온다 / 멀리서 오는 하늘은 / 호수처럼 푸르다 /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 온몸이 온몸이 /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에 / 호흡 호흡 /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 자꾸 목말라 마신다 / 마시는 하늘에 내가 / 능금처럼 내 마음 익어요 / (하략)”(양희은의 ‘하늘’, 1973, 박두진 작시, 서유석 작곡)
역시 범상치 않은 노래다. ‘여릿 여릿’이나 ‘호흡 호흡’ 같은 대목은, 정말 대중가요 가사로는 파격적이다. ‘아침이슬’에서는 힘찬 목소리를, ‘세노야 세노야’에서는 처연하면서도 초월적인 깊이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서는 절제 속에서 터져 나오는 절규를 드러낸 양희은의 목소리가 ‘하늘’에서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한 가을 하늘을 청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로 속도가 빨라지는 대목에서는 작곡자 서유석이 하이 파트로 화음을 맞추어 영롱한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이들 포크가 시를 노래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 시처럼 의미 충만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들으나마나 한 가사, 첫 구절 들으면 다 아는 가사가 아니라 언어적 긴장감이 넘치는 가사를 노래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사월과오월의 ‘옛 사랑’(‘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어스레한 등불의 밤이’)은 김소월의 시 ‘옛 이야기’를, ‘님의 노래’(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내 가슴에 젖어 있어요)는 김소월의 동명의 시를, 투코리언즈의 ‘벽오동’(‘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은 황진이의 시조를 가사로 삼았다. 1950년대 명동 시절 문인들의 술자리에서 작곡된 ‘세월이 가면’(박인환 작시, 이진섭 작곡)도 바로 이 시절 박인희의 목소리로 되살아나 박인희가 낭송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와 함께 박인희의 센티멘털하면서도 지적인 질감으로 지금까지 인상 지워져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노래가 이토록 히트하고 널리 불렸을까 싶다. 아름다운 음악의 힘을 중시했으면서도 그 못지않게 응축된 언어의 힘을 믿었던 시대, 언어의 의미를 향해 음악을 상승시켜 나가던 시대가 바로 1970년대 포크의 시대였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광화문 연가』 등 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