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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의여인' 신재순] 과거는 흘러갔다…이제 희망을 굽는다

미주중앙

입력

신재순씨가 1994년 한국에 나갔을 때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찍은 사진.

신재순씨는 아픔의 개인사를 뒤로하고 희망과 행복의 미래를 꿈꾸며 땀흘리고 있다.

신씨는 '그곳에 그녀가 있었네' 책 서문에서 "궁정동 사건 이후 내 인생의 주제는 불신과 고독이었다. 불신과 고독에 지치다 보니 무관심과도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믿는다. 언젠가는 내 본래의 모습대로 되돌아가리라는 것을"이라고 쓴 것처럼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누구는 나보고 '들장미 소녀 캔디' 같다고도 합니다. 원래 긍정적이고 털털한 성격이거든요. 지나간 과거는 이미 과거일 뿐이고 남아있는 시간과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지난 온 삶에 대해 후회도 있다.

"사람들은 죽을 때 더 잘해보고 살 걸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등 '걸걸걸' 하면서 숨을 거둔다고 하잖아요. 남들처럼 공부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자신감 있게 살았어야 되는데 너무 움츠려 살았다는 것이 후회스럽기도 해요. 하지만 지금은 장사(구이집)를 하면서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장사를 시작한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새로운 인생에 대한 도전이요 구속에서의 해방이다. '나'를 내놓고 살아가는 삶을 택한 것이다.

"10.26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가슴 속에 묵직하게 남아 있던 김재규 중정부장의 '버러지 발언'에 대해 진실을 밝혔다는 것이 무엇보다 홀가분합니다. 언젠가는 꼭 밝히고 싶었습니다. 또 초혼에 실패했던 사실을 고백했다는 점도 무거운 짐을 털어낸 기분입니다. 결코 자랑일 수는 없지만 내 인생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을 다시 복구한 느낌입니다."

이웃들과 스스럼없이 수다를 떠는 횟수도 점점 늘고 있다.

"가게를 닫을 무렵이면 친한 이웃들이 가끔 들러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서로 비즈니스가 어떤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얘기를 나누며 웃고 안타까워합니다.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사진이 어떻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겠다고 걱정도 해줍니다. 이런 진심들을 나누면서 이웃들의 깊은 정을 느낍니다."

두 달 전부터는 교회에도 나간다. 10.26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또 다른 여인인 가수 심수봉씨의 권유가 있었다. 지난 7월 말 오렌지카운티 기독교전도회연합회 주최 '심수봉 찬양간증콘서트'를 위해 남가주에 들렀던 심씨가 아는 목사 내외와 함께 신씨의 업소에 찾아와 성유를 머리에 발라주면서 기도해주고 간 후 마음에 변화가 일었다.

다섯 살 많은 심수봉씨와는 사건 후에도 함께 여행하는 등 언니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왔다. 심 씨가 공연이나 간증 등 행사로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서로 연락하고 때로 만나면서 '특별한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오랜 겨울잠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켜며 봄맞이 대청소를 시작하려는 사람처럼 그녀는 이제 우리의 이웃으로 자유로운 여인으로 함께하고 있다.

김병일 기자 mirso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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