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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22세 여대생, 지금은 LA근교 구이집 사장님

미주중앙

입력

신재순(왼쪽)과 가수 심수봉이 법정진술을 위해 법정에 출두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자료사진(왼편)과 그 이후 32년이 지난 10월중순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당시를 설명하고 있는 신재순 씨 모습. 백종춘기자
1979년 10·26 사건 현장에 있었던 두 여인
신재순씨가 자신의 음식점에서 기자와 인터뷰도중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인 인물로 남았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목격자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사건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녀는 지금쯤 중견 배우로 활발히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후 거의 은둔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재미동포를 만나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LA인근에 자리 잡고 살았다. 세월은 어느덧 32년이 흘렀다. 20대 초반이었던 그녀도 이젠 손녀 3명을 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을 받고 숨을 거둔 10.26사건 현장에 있었던 신재순(54.당시 H대 연극영화과 3년) 씨. 그녀는 83년 이후 LA근교에서 우리의 이웃으로 살고 있었다. 3년 전부터는 가디나에서 구이집을 경영하고 있다.

"당시 상황 합수부 세뇌로 나 자신 조차 혼란스러워
평생 지울 수 없는 그 사건 내 인생 진로 완전히 바꿔 "

구이집에는 9월 초 두 기자(김석하.박상우 기자)와 함께 셋이서 처음 방문했다.

문에 들어서는 순간 카운터에 서있는 여인이 당사자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소주가 몇 순배 돈 후 종업원을 통해 신 사장을 불렀다.

앉자마자 기자 신분을 밝히고 방문목적이 인터뷰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그녀는 단칼에 거절했다. 인터뷰는 하지 않겠다고. 음식 맛있게 들고 가라고.

첫 대면은 그렇게 끝났다. 일주일 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첫 만남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진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사양하겠다고 말했다. 짐작했던 대로 쉽지 않았다.

그날 이후 여러차례 찾았다. 마침내 그녀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진심을 받아줬다. 인터뷰 날짜가 정해졌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약 14년 만이다.

"사건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총을 쏘기 전에 '각하 이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는데 이는 보안대(당시 합동수사본부를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에서 시켜서 한 말입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 같았어요. 1994년에 출간한 자전적 소설 '그곳에 그녀가 있었네'에도 한결같이 주장했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조사과정에서 요원들은 함께 자리했던 심수봉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너는 왜 다르게 이야기하느냐며 다그쳤고 지속적으로 세뇌시켰습니다. 나중에는 나 자신조차 어느 게 진실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발언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김 부장이 차 실장에게 총을 쏘기 전에 무슨 말을 했느냐는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특히 같은 자리에 있었던 심수봉 씨는 신 씨의 책이 나온 후 4개월쯤 뒤에 펴낸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책에서 "김 부장이 대통령 앞에서 다른 참모들과 다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버러지 같은 …"이라는 발언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신씨의 고백으로 '버러지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됐다. 통설로 여겨지던 이 부분에 대한 신 씨의 증언이 거짓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그동안 소수설로 남아있던 심 씨의 증언이 앞으로는 역사에 남을 것이다.

신 씨는 하지만 10.26과 관련된 나머지 책 내용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심수봉씨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빠앙~ 갑자기 총성이 들렸지요. 총성이 들리기 전에 언성을 높여 싸웠다고요? 그런 건 다 거짓말이에요. 그분 앞에서 김씨하고 차씨가 투닥거리는 그런 장면은 감히 생각지 못할 일이죠. 사전 알력은 있었겠지만 총성은 그냥 갑자기 난 것이었어요. … 중략 … 각하는 총소리에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계셨어요. 이 녀석들이 또 철없이 난동을 부리는구나 하는 식의 태연한 모습이었어요…"

10.26사건은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한 여자의 인생진로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대학 2학년 때 첫 결혼 두 번의 이혼 굴곡…두 딸 얻고 3년 전부터 음식점
심수봉씨 권유로 신앙생활 언젠간 한국 무대에 서고 싶어요"

"10.26사건은 나에게는 운명적인 사건입니다.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뜻밖의 일입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사건으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만약 그 사건이 나지 않았다면 연예계 쪽으로 풀렸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습니다. 정말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참석한 자리에 대통령이 앉아 있었고 거기서 부하에게 총격을 받고 돌아가신 거예요. 이후 10.26사건을 무던히도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충격이 남아 있습니다. 그 사건은 내가 태어나서 사람이 죽는 것을 처음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또 총격사건이었기 때문에 총에 대한 공포가 여전합니다. '땅' 소리만 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하지요. 사건 직후에는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잠은 잘 잡니다."

김재규 중정부장과 그 일당은 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사살하지 않고 살려뒀을까?

"아마 자신들이 계획했던 일이 성공했다고 확신해서 안 죽였을 거라는 생각은 해 봤습니다. 데려다 주면서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말라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 이후 입이 무거운 여자가 됐지요."

짧고 비극적인 만남이었지만 그녀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한민국을 아주 사랑했던 사람이고 훌륭한 분으로 생각해요. 독재를 하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나라의 발전을 많이 이루고 국민을 위했던 분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어요."

박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 대해서는 "관심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한민국이 잘되고 국민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또 다른 고백을 했다. 10.26사건 당시 그녀는 이미 한 번 결혼하고 딸아이까지 둔 이혼녀였다. 대학생 미혼 여성으로 알려졌던 것과는 다른 사실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첫 결혼을 했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휴학했었지요. 재력가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가정적인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도 차를 몰고 다닐 정도로 여유있는 생활이었지만 막 20대를 넘긴 젊은 나이였고 참으며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이후 자식의 미래를 걱정한 친정 어머니가 어느 날 손녀를 친가에 보냈습니다. 5~6년 전에 큰딸로부터 연락이 와 다시 만났습니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대형 주류은행의 간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혼으로 역시 끝난 두 번째 결혼에서도 딸을 하나 얻었다. 현재 같이 살고 있다. 큰딸이 낳은 딸과 작은딸이 낳은 두 딸 등 모두 3명의 손녀를 두고 있다.

신재순씨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자식들 손녀들 잘되고 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또 내가 받은 만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나중에는 다시 한국에 가서 살고 싶습니다. 조용한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아름답게 마무리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연극도 해보고 싶어요. 언제든지 오면 받아준다는 학교 선배가 대표로 있는 극단이 있어요. 자신은 없지만 하고 싶어요."

신씨는 두 달 전부터 교회에 나가고 있다. 심수봉 씨가 권유했다고 했다. 새로운 신앙인의 삶을 익혀가며 마음의 평안을 찾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두 손을 모은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소서.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 웃음과 자유로움을 찾게 하소서. 평범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소서."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 10.26사건은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에서 중정부장이던 김재규가 박선호 박흥주 등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궁정동 안가에서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중정부장과 함께 가수 심수봉 대학생 광고모델 신재순을 불러 연회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김재규 중정부장은 차 경호실장과 박 대통령을 총으로 살해했다.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대통령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재규가 차지철과의 권력암투 과정에서 충동적으로 일으킨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재규는 재판정에서 "나는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습니다. 나는 민주회복을 위해 그리 한 것이었고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그리 한 것이었습니다. 아무 뜻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듬해인 1980년 재판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5월24일 교수형이 집행되면서 유명을 달리했다.

10.26사건 후 이 사건을 맡아 처리했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했다. 제5공화국 시대의 개막이었다.

김병일 기자 mirsol@koreadaily.com

** 신재순씨의 남은 이야기는 24일(월)부터 3회에 걸쳐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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