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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국가대표 만화가 이현세와 5시간 격정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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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외마디 소리에 놀라 쳐다보니 이 남자, 옷에 커피를 쏟았다. 큰일이다. 사진 찍어야 하는데. 그런데 일 저지른 사람이 되레 껄껄 웃는다. “에이, 이게 이현세지 뭐….” 맞다. 이런 게 이현세다. 지나간 일 안 돌아보고, 닥쳐올 일 겁내지 않는 남자. 돈과 건강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는 남자. 가장 자신 있는 표현기법이 뭐냐고 물었더니 “다 잘한다”며 킬킬거리다가도, 한국 만화의 미래를 얘기할 땐 보는 사람을 뚫어버릴 듯한 눈빛을 쏘아내는 남자. 대학 교수(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이란 직함보다 ‘만화가’란 호칭이 여전히 더 잘 어울리는 남자. 이현세는 그런 남자다.

글=김선하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세숫대야 써 봤나? 세면대 말고 세숫대야. 거기다 살아 있는 잉어를 넣으면 펄쩍펄쩍 뛰겠지? 내 성향이 딱 그렇다.” 이거 단단히 잘못 걸렸다. 스스로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잉어’라고 하는 사람을 인터뷰란 ‘세숫대야’에 어떻게 담는단 말인가. 하긴 그가 그려온 만화들에서 이미 눈치챘어야 했다. 『국경의 갈가마귀』에서 만주 벌판을 내달렸고, 『공포의 외인구단』에선 야구 배트를 휘두르더니, 『아마게돈』으로 우주를 누볐다. 『남벌』에선 남북한이 손잡고 일본과 싸우게 했고, 『천국의 신화』에선 아예 주인공들을 신화의 시대로 보내버렸다. 대야에 담아놓을 수 없다면 어디까지 튀어오르나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현세 만화’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쳐 은하수처럼 부서지는 캐릭터, 그런 남자를 그리는 만화다. 소재는 뭐든 상관없다. 작가 중엔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싶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겠지. 자기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려고 작가가 된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내 경우엔 이런 캐릭터를 그리고 싶어 만화가가 됐다. 내 만화의 중심에 늘 ‘오혜성(까치)’이란 캐릭터가 있는 이유다. 나는 오늘 극좌로 갔다가, 내일 극우로 갈 수도 있는 사람이다. 이데올로기도 내겐 소재일 뿐이니까.”

 1980~90년대를 살아온 남자들에게 한국 만화의 아이콘을 셋 꼽아보라면 대부분 허영만과 고(故) 박봉성, 그리고 이현세를 고를 것이다. 『오! 한강』의 허영만이 독자를 고뇌하게 했다면, 『신의 아들』의 박봉성은 초인적 영웅을 통해 보는 이에게 쾌감을 줬다는 평을 들었다. 그럼 이현세는?

 “왠지 마지막 페이지를 보기 싫어지는 만화란 소릴 들었지. 꼭 해피엔딩이 적어서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탱크에 짓밟혀 죽는 두 남녀의 슬픈 이야기 같은 건 아주 싫어한다. 여자가 탱크에 짓밟혔으면, 남자 놈은 최소한 돌멩이라도 들고 뛰어들다가 죽는 걸 그리는 거지. 내 만화가 다른 작가들과 특히 달랐던 건 그런 부분 아닐까? 물론 한 손으로 여자를 구해낸 뒤 다른 손으론 탱크 뚜껑을 열어 폭탄을 던지고 돌아서는 박봉성의 만화와도 달랐고 말이다.”

●어릴 때부터 만화가가 될 작정이었나.

 “만화를 좋아하긴 했다. 재능도 있었고. 만화책 뒤 페이지 독자투고란에 내 그림이 단골로 실렸거든. 하지만 당시엔 만화가 ‘범죄’였다. 만화책 보다 들키면 압수당하고, 정학 먹고… 그런 시대였다. 미대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 근데 내가 색약이라 안 된다더라. 만화 그릴 팔자였던 거지.”

●순정만화 작가의 문하생으로 출발했다던데.

 “기존 만화가들 주소를 구해 내가 좋아하는 ‘활극’ 스타일의 남성만화 작가들을 몽땅 찾아다녔다. 당시엔 집에 전화 있는 작가도 별로 없었거든. 버스 토큰을 왕창 끊어 서울·경기 일대를 다 돌아다녔는데 아무도 나를 안 쓰더라고. 내 인상이 그렇게 사나웠나?”

 ‘몰라서 묻느냐’는 말은 차마 못했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하긴 그렇게 공손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을 거다. ‘장비 수염’이 빨리 자라기도 했고…. 그나마 순정만화 그리는 선생님 한 분이 받아주셔서 문하로 들어갔다. 근데 하는 일이 만날 꽃이랑 별 그리는 거더라고. 내 취향에 맞지도 않는 이야기 구조인데 날마다 배경에 꽃 채워 넣고, 밤하늘에 화이트로 별 찍다 보니 이거 참 미치겠더라. 그래서 6개월 만에 그만두고 경북 경주 집으로 내려갔다. 취직을 해볼까 해서 농협도 사나흘 다녀보고, 뒤늦게 대학에 들어갈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때 알게 된 거지.”

●뭘?

 “내가 큰집에 양자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갑자기 복잡해지더라. 엄마가 큰어머니 되고, 작은 어머니가 진짜 엄마 되고, 사촌동생인 줄 알던 애들이 친동생 되고…. 뒤늦게 대학 가겠다고 학비 대달란 소리가 차마 안 나왔다. 집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도망쳐야 되겠는데 암만 찾아도 숨을 곳이 만화밖에 없었다.”

 그의 ‘복잡한’ 가족사의 출발점은 할머니다. 할아버지와 결혼한 뒤 만주로 이주했던 할머니는 그곳에서 일본 순사의 총에 남편을 잃었다. 도망치듯 아들 셋을 데리고 고향 울진으로 돌아왔다. 얼마 뒤 둘째 아들이 돈 좀 벌어보겠다며 혼자 다시 만주행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남북이 갈려버렸다. 어느 날 인민군 장교가 된 둘째가 집에 찾아왔다. 밥 한 끼 먹여 보냈을 뿐인데 가족은 순식간에 ‘빨갱이’ 집안이 됐다. 첫째 아들은 동생 때문에 헌병대에 붙들려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장남의 대는 이어줘야겠다는 생각에 막내아들의 첫 아이를 양자로 보냈다. 행여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가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아이가 바로 이현세다. 그는 “아홉 살 때 작은 아버지(실제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삼촌인 줄로만 알아서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식민지·분단·연좌제가 남긴 상처의 흔적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족을 찾아 만주를 유랑하는 사내가 등장하는 『국경의 갈가마귀』가 그렇고, 남북이 함께 일본과 전쟁을 벌이는 『남벌』도 그랬다.

●민주화 이후엔 그렇다 치고, 검열 심하던 70~80년대엔 소재에 제한이 많았을 텐데.

 “사전 심의가 정말 대단했다. 데뷔작인 『저 강은 알고 있다』가 79년에 나왔는데 사실 그 전에도 만화 그렸다. 죄다 심의에 걸려 출간도 못하고 폐기됐을 뿐이지. 내가 ‘삐딱이’ 기질이 있다 보니 일년 내내 그려봐야 술값도 못 걷어오는 신세였다. 그 당시엔 심의실 몇 번 들어갔다 나오면 이야기가 완전히 걸레가 됐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내용, 새마을운동 해서 성공하는 이야기 아니면 죄다 걸렸으니까. 달동네를 못 그리는 건 물론이요, 군인이 휴가 나와서 웃통 벗고 아버지 일 도와주는 장면도 안 됐다. 군복 함부로 벗으면 안 된다나. 심지어 콩쥐팥쥐도 동화는 돼도, 만화는 안 됐다. 계모에게 너무 심하게 ‘탄압’ 받는다는 거지.”

●콩쥐팥쥐가 안 됐다고?

 “뭘 그 정도 가지고…. 소재가 아니라 등장인물 표정이 맘에 안 든다고 고치란 지시도 있었다. 심지어 역광 효과를 살리려고 벽에 걸린 액자에 그림을 안 그려 넣었더니 ‘빈 액자 채우시오’라고 적어 보내더라. 심의가 족집게면 나는 미꾸라지가 되기로 했지. 격한 표현을 해야 하는 장면에선 슬쩍 ‘순화’한 그림을 심의에 보내고, 통과되면 미리 그려서 오려뒀던 원래 컷을 풀칠해 붙여서 책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더라. 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엔 만화가들을 남산에 죄다 불러모아 띠 두르고 ‘우리는 불량만화를 그리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치게 하더라고. 마침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정말 눈물 나던데? 아예 만화 없애려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만화 계속 그리려면 뭔가 대책이 필요했지.”

●어떤 대책을 세웠나.

 “왜 유독 만화만 가지고 이럴까 생각해보니 아이들만 보는 매체라 그렇더라고. 그래서 무슨 수를 쓰든 남녀노소 다 보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 마침 프로야구가 시작됐는데 이거다 싶었다. 아마추어 스포츠에 음모·책략·돈·치정 같은 성인을 위한 요소를 담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온 게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내 목표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압수하면 숙직실에서 보다가 ‘야, 다음 권 없냐’고 묻게 만드는 거였다. 집에서 부모가 공부에 방해된다고 빼앗았다가 ‘다음 편 좀 빌려와라’ 하게 하고. 그래서 ‘외인구단’은 다층적 이야기 구조를 담고 있다. 아이들은 오혜성과 마동탁의 스포츠 승부에만 빠져들었겠지. 하지만 그 뒤엔 유부녀를 끝까지 사랑하는 남자,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패권주의, 적어도 원하지 않는 일은 안 하고 살고 싶다는 소시민적 욕구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 사실 어른들을 위한 얘기였던 거지.”

 82년 작인 이 만화의 대성공은 그의 바람처럼 어른들을 만화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지옥의 링’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테러리스트(원제 카론의 새벽)’ ‘폴리스’ ‘버디버디(원제 버디)’ 등 이현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드라마가 쏟아지게 된 시발점이기도 했다.

●늘 성공만 할 순 없었을 텐데.

 “당연하지. 96년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은 ‘실패의 종결자’다. 원래 내가 기계 그리는 걸 싫어한다. SF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이유다. 그런데 스토리 작가 야설록이 어느 날 맘에 쏙 드는 줄거리를 들고 왔다. 88년 만화로 연재할 때는 큰 성공을 거뒀다. 애니메이션은 왜 망했냐고? 엉터리였으니까…. 우선 제작 당시 내가 『남벌』의 신문 연재에 매달려 자투리 시간에만 애니메이션 일을 했으니 총감독인 나부터 엉터리였다. 거기다 애니메이션 연출을 만화 문법으로 해놓아 이건 영화가 아니라 슬라이드를 한 장씩 넘기는 꼴이었다. 여자 주인공이 죽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조차 관객이 공감할 시간을 안 줬다. 죽자마자 장면이 홱 넘어가 버렸지. 관객들이 여주인공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더라고. 총 48억원쯤 들어갔는데 8억원 건졌다. 개인적으로도 손해 많이 봤다. 하지만 크게 배운 것도 하나 있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깨진다는 진리 말이다.”

‘오늘의 배터리’ 내일 쓰려고 아끼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만화 한 권 안 읽어본 사람도 알 만한 만화가가 둘 있다. 이현세와 허영만이다.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종종 비교 대상이 되는 이유다. 그래서 물었다.

●허영만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허 선배가 나보다 상당히 선배다. 허 선배가 나보다 잘하는 거? 아주 많다. 일단 자료 수집이 그렇다. 드로잉 능력도 탁월하다.”

●그림을 더 잘 그린단 건가.

 “가벼운 터치로 그려서 그렇지 기본적 드로잉 능력은 아주 천재적인 사람이다. 유머 감각도 나보다 낫다. 그리고 자기 관리를 나보다 훨씬 잘한다. 허 선배는 술을 먹다가도 내일 스케줄 때문에 그만 마실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이고.”

●이거 하나는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 뭔가.

 “꼭 내가 더 낫다기보다… 허 선배에게 만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인 것 같다. 내겐 만화가 생명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치열함은 내가 허 선배보다 조금 낫지 않을까? 하지만 내일 살아갈 걸 준비하는 데 있어선 내가 게임이 안 되지. 그림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 형 그림이 점점 간략화돼 가면서 예술의 경지로 가고 있다면 나는 그것보단 여전히 원초적 표현 행위에 더 욕망이 있다고 할까.”

●언젠가 ‘내 무기는 낙천성’이라고 했는데.

 “물론 슬프고 괴로울 때도 있지. 하지만 그럴 때도 그렇게 낙담하진 않았던 것 같다. 대학 진학 좌절됐을 때도, 양자로 들어갔다는 걸 알았을 때도, 재판 받을 때도…. 술 진탕 마시고 일어나면 못 견딜 일이 별로 없더라. 지금도 협심증·당뇨 같은 병에 내가 크게 속박당하진 않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아내에게 욕 많이 먹지. 하지만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버리고 나면 내일은 오든지 말든지…. 내일 쓰려고 오늘 배터리를 아껴두는 짓은 안 한다. 그러다 아침에 눈이 떠져서 새로운 하루를 맞을 수 있게 되면 이렇게 말하는 거지. ‘뭐야, 오늘도 또 하루가 열렸잖아’. 이렇게 사는 것도 참 신나는 일 아닌가.”

『천국의 신화』 6년 재판, 표현의 자유 얻었지만 한창 일할 ‘40대’ 잃었다

이현세가 애니메이션 『아마게돈』과 함께 ‘대실패작’으로 꼽는 것이 『천국의 신화』다. 그는 검찰이 이 만화를 ‘음란물’이라며 기소하자 6년의 법정 투쟁 끝에 2003년 1월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6년을 싸워서 이겼는데 실패라고?

●어떤 점에서 실패였나.

 “『천국의 신화』 1부를 그릴 때는 40대 초반이었다. 그때 이현세가 본 역사는 ‘투쟁’의 기록이었지. 그런데 재판 6년 하고 나니 쉰 살이 다 됐더라. 역사를 보는 눈은 ‘순리’로 바뀌어 있고. 이 만화의 1, 2부는 엄밀히 말해 전혀 다른 작품이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신화를 다루는데 통일성이 전혀 없다. 그냥 뚝 끊긴다. 분량도 100권까지 내겠다고 해놓고 절반으로 줄였다. 이미 흥은 식어버렸지만 내가 어릴 때 가장 미웠던 만화가·소설가가 끝 안 맺고 중간에 사라져버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끝이라도 낼 수 있었다.”

●재판을 통해 뭘 얻었고, 뭘 잃었나.

 “외설을 만드는 것은 소재가 아니라 의도다. 옷을 입었느냐, 벗었느냐가 아니라 성적 충동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있느냐를 봐야 한단 거다. 비너스 조각을 보고 성적 충동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아니냐. 재판 하면서 많은 걸 잃었다. 남들은 40대가 가장 열정적으로 일할 나이라는데, 나는 이 시기가 텅 비어 있다. 협심증과 당뇨도 생겼다. 얻은 것? 표현의 자유를 얻었다. 그 뒤론 적어도 만화를 마녀 사냥하듯 다루진 않으니까. 더 큰 것은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깨우침이겠지. 뭔가를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더라고.”

 역사에 상처 입고, 역사 만화를 그리다 상처 입었는데도 그는 또 역사를 붙들고 늘어졌다. 이번엔 어린이가 대상이다. 2005년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 10권을 완간한 데 이어 이달 들어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를 총 15권으로 끝맺었다.

●왜 또 역사인가.

 “지금껏 우리가 배운 세계사에는 강대국의 역사만 있지 않나. 우선 내가 궁금했다. 인도차이나·남미·아프리카의 역사는 과연 어떤 것인지. 마지막 권인 15권에선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까지 다뤘다. 한국사는 해방에서 끝냈는데 균형을 맞추려면 앞으로 노무현 정부까지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대상인 것은 미래를 위한 연습인 측면도 있다. 일흔 살부턴 ‘동화 그리는 할아버지’가 될 작정이다. 그때쯤 되면 지금 내 한국사·세계사 보는 아이들이 부모가 돼 동화 읽어줄 자녀가 생길 거다. 이왕이면 친숙한 할아버지 책을 고르지 않을까? 그런 전략적 생각도 조금은 깔려 있다(웃음).”

 그는 법적으로 55세다. 실제론 두 살 더 많다. 현재 맡고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임기를 2013년까지 채우고 나면 생물학적으로 예순 살이 된다. 그는 “60대에 뭘 할지는 미정”이라며 웃었다.

●또 한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론 큰 고민 없다. 걱정이 있다면 점점 눈 안 보이고, 손 떨리면 그림 못 그릴까 하는 정도겠지. 하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는 제자들 생각하고, 한국 만화의 미래를 생각하면 고민이 많다. 출판만화 시장은 점점 작아지는데 게임 업체 말고 아이들을 보낼 곳은 없을지 고민한다. 일본 만화가 아직 개척 못한 ‘그래픽 노블’을 통해 미국·유럽·중국 시장에 진출시킬 순 없을지도 고민 중이다. 미국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 한국 작가들의 집단 창작소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 j 가 지난주에 미국 최고의 만화 출판사인 ‘DC코믹스’의 공동 발행인 짐 리를 인터뷰했었다.

 “꼭 한번 소개해 달라. 우리 젊은 작가들이 무협 같은 동양적 판타지로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미국에선 캐릭터의 지적소유권을 작가가 아닌 출판사가 갖는다는 게 한 가지 걸림돌이긴 한데…. 개인적으론 일단 교두보를 마련한 뒤 경쟁력을 갖게 됐을 때 지적소유권을 신경 쓰는 게 맞지 않을까 한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허 참, 뭐 그런 당연한 걸 물어요. 제 나이가 돼 보면 가장 중요한 건 가족 아닌가요? 예술·열정·명예,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물어보시려면 이렇게 물어야지. ‘당연히 가족이 제일 중요하시겠지만, 그걸 빼면 뭐가 가장 중요합니까’라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뭐냐고요?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자존심’이죠. 사업을 할 때마다 들어먹은 것도 전부 자존심 때문이었어요. 전에 만화잡지 할 때 직원이 그럽디다. ‘사장님, 이제 일본 만화도 넣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망합니다.’ 그런데 창간할 때 한국 만화로 승부하겠다고 말해놨는데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하더라고. 이러니 제가 사업을 잘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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