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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여성의 성, 그 신비한 미로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학교수 엘렌(45)
은 남편과의 잠자리가 즐겁지 않았다.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없었으며, 섹스에 대한 관심도 그저 그랬다. 카운슬링도 소용이 없었다. 의사를 만나봐도 어쩔 수 없다는 투였다.

그녀는 그 후 볼티모어의 한 비뇨기과 전문의가 성생활에 문제가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소규모의 비아그라 임상실험을 시행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남성들에게 기적을 가져다준 그 약이 자신의 결혼생활에 방해가 되는 ‘빙산’도 없애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엘렌은 6개의 알약(위약과 비아그라 각기 세 알)
을 받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성의 욕망에 얽힌 신비를 푸는 작업에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따르면 여성의 성욕은 영혼의 ‘어두운 대륙’이며 지도가 없는 지하세계다. 20세기의 중요한 학설중 여성과 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주장(특히 남근 선망설)
만큼 엉터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 후 몇십 년간 과학은 바른 학설과 잘못된 학설을 계속 내놓았다. 의사들은 1920년대 말까지 이른바 ‘골반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여성들을 손으로 자극해 흥분시켰다. 치료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등장한 바이브레이터가 인기를 끌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앨프리드 킨지와 마스터스·존슨 팀은 남성 성욕의 프리즘을 통해 여성의 성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킨지 연구소의 현 소장인 존 밴크로프트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성욕·성적 쾌감·[성적 목표]를 남성의 견지에서 규정해온 문화에서 아직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에게도 똑같은 패러다임을 적용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발기와 사정이라는 남성의 패러다임은 단순하다. 여성의 만족과 성충동은 한층 복잡하며 상대와의 정신적인 유대감이 오르가슴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단순한 통찰에 과학이 접목되면 혁명적인 프로그램이 나온다. 비아그라의 눈부신 성공과 그 약이 여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도화선이 돼 성에 대한 실험의 새 시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실험은 침실이 아니라 연구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보스턴의 비뇨기과 전문의이자 남성과 여성에 관한 연구의 개척자인 어윈 골드스타인 박사는 “새로운 발견의 서부개척시대”라고 말했다.

미국 여성 10명중 4명은 어떤 형태로든 성적 불만족을 경험하는데 만족한 성생활을 당연시하는 베이비붐 세대 여성 4천1백만 명이 폐경기에 접어들면서 그 수치는 증가할 것 같다. 여성의 성기능 장애는 침실에 국한되지 않고 여성의 복지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자궁절제술을 받은 후 성감(性感)
을 상실한 한 대학교수(55)
는 “어느 면에서는 유방암보다 더 내 인생을 황폐화시켰는지 모른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도 사라져버렸다”고 말했다. 제약회사·연구조사 전문의사·전통적인 치료요법사들도 모두 그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그들의 작업은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여러 급진적인 해석을 낳고 있다.

비아그라의 제조사인 파이저를 비롯해 10여 개 제약회사들은 주로 남성 성기능 장애 치료를 목표로 했던 치료제의 연구·개발에 무분별하게 뛰어들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는 성적으로 흥분해 있는 동안 혈액이 충혈되는 부드러운 근육 조직을 갖고 있다.

연구가들은 비아그라가 남성 성기에 작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핵 조직을 이완시켜 그 부위의 혈관이 혈액으로 팽창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지금까지 실시된 여성에 대한 비아그라의 임상실험중에서 가장 포괄적인 실험 결과가 최근 발표됐지만 위약 이상의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디시즌 리소시스의 분석가 셰릴 부르크는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을 포함해 여성들을 위한 치료제 시장이 2008년에는 17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역시 수십 년 후의 일이겠지만 여성들만을 위해 고안된 약품들이 나오게 되면 그 액수는 한층 증가할 것이다.

제니퍼 버먼은 이런 첨단 연구 분야에서 활동하는 몇 안되는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다. 얼마전 폐경과 유방절제술 이후 성교시 질 건조증과 통증에 시달리며 섹스에 대한 흥미를 모두 상실했다는 한 여성(54)
이 버먼을 찾아왔다.

버먼은 그녀의 성기에 대한 혈류를 검사하기 위해 바이브레이터와 3-D 안경을 주고 선정적인 비디오테이프를 보도록 했다. 그녀가 테이프를 보는 동안 전자 탐폰과도 같은 초음파 탐침(探針)
이 그녀의 혈액 흐름을 모니터했는데 기능장애의 신체적인 구성요소를 알아내기 위한 시도였다.

버먼과 성기능 장애 치료요법사인 그녀의 동생 로라는 TV 출연을 통해 성적 불만을 가진 여성들의 대변자가 됐다. 그들은 몸과 마음을 모두 대상으로 삼는데 많은 의사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여성의 성기능 장애에 최상의 치료법이 될 것으로 믿는다.

여성들의 경우 단순히 ‘의학적으로만’ 다루는 것은 문제를 너무 단순화하는 것이다. 남성들은 비아그라를 통해 그저 발기된다는 사실에 행복해 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혈액의 흐름을 원활히 한다 해도 스트레스가 부부관계, 가정생활, 여성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면 거의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똑같은 불만을 호소하는 여성들에게도 약, 주말 휴식, 섹스 기구 또는 그 세 가지를 섞어 개인별로 처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의학적인 진보는 중요한 열쇠를 약속해준다. 해부학자들은 기본적인 인체 기관에 대한 지도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보스턴大의 한 회의실에서 트루디 밴 후튼은 의과대학 4학년 여학생에게 음핵의 크기를 물었다. 그 학생은 잠시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였다.

밴 후튼은 1cm인가, 10cm인가라고 다시 물었다. 의대 4학년생이면 인체의 각 부분에 관해 웬만큼은 알고 있어야 했지만 그 여학생은 단순해 보이는 그 질문에 쩔쩔맸다. 그녀는 “음핵이 10cm까지야 되겠는가”고 간신히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밴 후튼이 해부도면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설명하자 그 학생은 아주 놀란 표정이었다.

새로운 조사연구는 징그러운 면도 있다. 골드스타인은 성적 반응의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시체, 수술한 환자 또는 동물의 음핵·음순·질을 ‘수확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텍사스大(오스틴 소재)
의 심리학자 신디 메스턴은 남성의 성적 흥분을 중단시키는 신경계를 자극할 경우 여성에게서는 오히려 성적 흥분을 촉진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보고했다.

밴 후튼과 같은 연구가들은 골반 부위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수많은 신경의 지도화 작업에 착수했다. 남성의 전립선 제거 시술에서와 마찬가지로 궁극적으로는 자궁절제 시술시에도 환자들의 신경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깊어지면서 성기능 장애의 유형과 원인도 재고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성기능 장애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성욕부진이나 성혐오증, 성적 흥분 장애, 오르가슴의 결여, 성교통(性交痛)
이 그것이다.

건강한 여성도 때때로 이런 증상들을 경험할 수 있다. 기능 장애의 원인은 신체적인 것(당뇨·비만 등 순환기 장애)
과 정서적인 것(스트레스·피로·우울증 등)
,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으로 나눌 수 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많은 약품들이 성욕을 저하시킨다는 것은 잔인한 아이러니다.

많은 여성들의 경우 진정한 도움은 아직 요원하다. 뉴욕 인간 성욕 센터의 리드완 샵사이 박사는 빽빽하게 얽힌 튜브들을 찍은 컬러 사진을 자랑스레 내보였다.

그의 연구팀이 살아있는 쥐의 혈류에 경화 수지(樹脂)
를 주사한 후 그 쥐를 산(酸)
용액 속에 담가 용해시키자 혈관이 있던 자리의 굳은 수지만 남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전자 현미경을 통해 본 이미지에는 쥐의 질 속 혈관 조직이 나타나 있다. 그는 “이것은 과학에 있어 커다란 도약”이라고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과 일반 의사들로 이루어진 샵사이의 연구팀은 여성의 성적 반응 연구에 최신 이론을 적용했다. 1970년대 영향력있는 정신의학자 헬렌 싱어 캐플런은 여성의 성적 반응을 욕구-흥분-오르가슴이라는 3개의 연속적인 단계로 분류했다.

희열을 향해 한쪽으로만 진행되는 화살표 모델이었다. 샵사이는 이 화살표 모델이 기쁨의 여러 국면 사이의 상호작용을 무시하고 있다며 “우리는 여성의 성적 기능을 직선이 아니라 욕망·흥분·오르가슴·만족의 네 점을 잇는 원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중 어느 한 점에서 동요나 방해가 있을 경우 다른 점들의 상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오늘 오르가슴에 문제가 있을 경우 다음주 성욕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성적 불만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은 성욕에 관한 것이지만 현재 검사받고 있는 약품 대다수는 성적 흥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많은 의사들은 이 때문에 장차 그 약품들의 효과가 제한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엘렌 같은 여성들은 성을 그렇게 세밀하게 구분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부부간에 잠자리가 중단되면서 자신과 남편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비아그라가 성욕을 일으킬 뿐 아니라 오르가슴도 가져다 주기를 기대했다. 불행히도 비아그라는 그녀에게 효과가 없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소펨·알리스타·펨프록스 등 현재 개발중인 약품 대다수가 비아그라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얼마전 발표된 비아그라에 대한 실망스러운 실험결과는 업계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다.

파이저의 헤더 반 네스는 “우리는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며 “이 분야는 발기부전보다 더 복잡한 것 같다”고 말했다. 비아그라 실험에 참가했던 로즈메리 배슨 박사는 그 연구의 대상 연령층과 불만의 범위가 너무 넓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연구 대상의 연령을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로 제한한 연구가 준비중에 있다. 또 시상하부로부터 생식기에 전기 자극을 보냄으로써 혈류의 증가를 유발하는 ‘도파민 작용 물질’ 아포모르핀(최근 남성에 대한 사용을 승인받기 위해 추천됐다)
도 현재 시험중이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은 약품 외에도 또 있다. 지난 5월 초 美 식품의약국(FDA)
은 여성의 음핵을 흡인해 외음부에 혈액을 모아주는 컴퓨터 마우스 크기의 기구 에로스-CTD를 승인했다. 가격이 약 3백60달러인 이 기구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구입할 수 있다.

호르몬 요법 또한 전망이 밝지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테스토스테론은 남녀의 성욕과 관계돼 있지만 아직 그 경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대다수 여성이 30∼40대에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15% 정도 감소하는 것을 경험한다. 난소 절제(자궁 절제 수술의 일부인 경우가 많다)
는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거의 제로 수준까지 감소시킨다.

캘리포니아大의 루안 브리젠다인 박사는 경구와 패치 형태의 테스토스테론 대체요법을 실험해왔다. 테스토스테론은 다루기 까다로운 약품이다. 심장질환·간 손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장기적인 영향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또 과다복용할 경우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다.

생물학자들이 성욕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가운데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이 왜 오르가슴을 갖는가다. 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성의 경우와 달리 생식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1979년 인류학자 돈 시몬스가 표현한 대로 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성의 젖꼭지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진화의 유물이라는 것이 전통적인 답이다. 최근 미국의 대학가에서는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여성이 오르가슴을 가질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오르가슴은 여성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성교 후 반듯이 누워있게 함으로써 수정을 촉진시키는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대다수 여성은 성교중(특히 정상체위에서)
꼭 오르가슴에 도달하도록 돼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진화생물학자 세러 블래퍼 흐르디는 여성이 성교시 반드시 오르가슴에 도달하지 않는 것도 진화적 적응에 해당된다고 말한다.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우리의 여자 조상들은 다수의 파트너를 상대하는 데서 구제책을 찾았다.

그들은 누가 아이의 아버지가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각 파트너에게 보호와 생필품 조달을 요구했다. 어쩌면 오르가슴은 여성들이 어떤 파트너를 자녀의 아버지로 삼을 것인가 하는 데 영향을 주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생물학자 로빈 베이커와 마크 벨리스는 남성의 음경 끝에 마이크로 비디오 카메라를 달아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할 경우 파트너의 정액을 더 많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뉴멕시코大의 한 연구에서 연구원 랜디 손힐과 스티븐 갠지스태드는 다른 조건들이 같을 경우 여성들은 파트너가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을 때(이상적인 유전자의 상징)
쉽게 절정에 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손힐은 “이런 경향은 여성들의 선택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든, 성의 신비는 하룻밤에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예 정도로 생각하든 무방하다.

그러나 새로운 성의 과학은 학문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실험실에서의 혁명은 침실뿐 아니라 주변 사회에 예측불가능한 변화의 바람을 몰고올 가능성이 있다. 재리드 다이아몬드가 저서 ‘총, 배자(胚子)
, 그리고 칼’(Guns, Germs and Steel)
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의 필요에 따라 신기술이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신기술이 사회의 필요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시 말해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위크=John Leland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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