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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홍 “한국 가계 빚이 문제라면 다른 나라는 이미 파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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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금융사들이 죄다 비실대는 건 아니다. 비상하는 곳도 있다. 2005년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을 인수한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이 그렇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고도 성장을 구가하는 아시아·아프리카·중동 세 지역에 특화한 것이 비결이다. 수익의 90% 이상이 세 지역에서 나온다. 자회사 중 알짜는 SC홍콩이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덩치를 키운 중국의 턱밑에서 금융 플랫폼으로 급부상한 덕분이다. 8일 홍콩 SC 본사에서 만난 벤저민 홍(47·사진) SC홍콩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과 달리 아시아 시장의 체질은 아직 괜찮은 편”이라며 “한국도 이번 위기를 잘 극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는 그는 SC제일은행을 키우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홍콩 금융회사들은 글로벌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홍콩은 개방 경제다. 돈의 유출입이 자유롭다. 홍콩이 성공한 이유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전 세계 변동성에 영향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어 나름 대비하고 있다. 우선 홍콩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좀 높게 16%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예대비율(예금 대비 대출 비율)도 65%로 낮다. 예금이 100달러이면 65달러를 대출하고 나머지 35달러는 유동성으로 보유한다. 과도하게 대출하지 않는 것도 관행이다. 자산 1000만 홍콩달러 이상이면 대출 금액이 자산의 50%를 넘지 못하게 한다. 국채 매각만으로 예금 인출 사태 때 8일 정도 버틸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선 가계대출에 대한 걱정이 많은데.

 “한국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60%는 국제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것이다. 미국·영국의 서브프라임은 자산가격의 90%를 넘는다. 한국의 가계대출이 많다고 하지만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보다는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가계대출 비중은 낮은 편이다. 한국의 가계대출이 문제라면 다른 나라는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1997년과 2008년 금융위기 때 외화 유출로 고생한 한국은 단기 외화차입을 규제하는 등 다각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 위기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

 “한국을 포함해 많은 아시아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을 크게 늘렸다. 한국 경제는 교역 의존도가 높으므로 외부 환경 요소나 변동성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급속한 자본 유출로 국가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건 곤란하므로 최근의 자본유출 통제 조치는 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시장이 성숙하고 외환보유액이 늘어날수록 이런 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이번 위기를 훨씬 잘 견뎌낼 것이다.”

 -전체 그룹 전략 차원에서 SC제일은행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지난 10여 년간 SC그룹이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곳이 한국이다. SC제일은행이 성공하지 못하면 SC 그룹의 미래가 없다. 수신 기반 확대와 더불어 SC의 강점인 기업금융 부문을 활성화해 한국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갈 것이다. SC제일은행이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실적 기반 보상주의로서 홍콩 등 모든 나라에서 같게 적용하고 있는 부분이다.”

파업을 전후해 나온 SC제일은행 매각설에 SC그룹 관계자들은 “아시아 중시 전략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란 반응을 보였다.

홍콩=허귀식 기자

SC금융그룹은

◆ 영업 지역 : 70여 개국(유럽·미주보다 아시아·중동·아프리카 주력)

◆ 직원 수 : 8만5000명(125개 국적)

◆ 두 자릿수 성장세 : 영업수익 2000년 40억9000만 달러 →2010년 160억6200만 달러(연평균 14.7% 성장)

자료 : SC그룹

제일은행 사라지고 SC은행으로

은행명 곧 변경 … ‘제일’ 상호 53년 만에 역사 속으로

SC제일은행이 올해 안에 이름을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바꾼다. 이로써 1958년부터 쓴 ‘제일’이란 상호는 5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SC제일은행은 지난 6일 이사회를 열고 행명 변경 안건을 통과시켰다고 10일 밝혔다. 변경 날짜는 정확히 정하진 않았지만 12월 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은행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인정받는 스탠다드차타드 그룹의 이름을 한국 고객에 어떻게 알릴지 오랫동안 검토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일각에서 제기하는 한국 철수설을 확실히 잠재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행 측은 행명을 바꾼 뒤에도 ‘제일’이란 명칭은 상품이나 지점 이름에 계속 사용하겠다는 방침이다.

 SC그룹은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했다. 세계 70여 개국에 진출한 SC그룹은 한국에서만 현지 브랜드(제일)를 은행 이름에 섞어 써 왔다. 2009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뒤부터 은행 이름을 바꾸기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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