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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탈북자 "부친, 한국인 100명 납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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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달 13일 목선을 타고 일본 해역에 표류한 탈북자 9명이 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탈북자들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입국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일본 해상에서 발견된 뒤 4일 서울에 도착한 탈북자 9명 가운데 40대 남성 1명이 자신의 할아버지가 월북한 백남운(白南雲·사망·사진) 전 최고인민회의(국회) 의장이라고 일본 측 조사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남성은 또 아버지가 남한 인사 납치를 담당한 노동당 간부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남운은 1947년 월북한 경제 사학자 출신으로 남한 학자, 교원 수십 명을 월북시켜 김일성대 설립에 공헌했다. 이 탈북자의 진술이 사실일 경우 북한의 대남 납치 공작의 일부가 밝혀질 가능성이 있어 관계당국의 조사가 주목된다.

 

백남운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익명을 요구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날 “탈북자 1명이 백남운의 손자라고 분명히 진술했다”며 “손자임을 증명할 만한 객관적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과정과 할아버지, 부친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어 “탈북자들이 한국에 돌아간 만큼 한국 정부가 (진술 내용에 대해) 확실하게 분간을 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일본 후지TV는 “북한 인민군 소속인 이 남성이 (일본 측 조사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노동당의 대남 공작 지도원으로서 한국인 납치 공작에 종사했다고 증언했다”며 “아버지의 경우 한국인 100명 가까이를 납치해 스파이 교육을 시킨 다음 다시 한국에 보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남성의 진술이 사실일 경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남 월북·납치 공작을 하고, 3대가 탈북하는 극히 드문 케이스가 된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본인이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 못해 자세한 것은 추가로 조사를 해봐야 한다”며 “그러나 북한 주민들 가운데 백남운을 알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특히 이 남성의 아버지가 노동당의 대남 공작 지도원이라는 진술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을 포함한 탈북자 9명은 4일 정오쯤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성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 각각 3명씩인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30분 일본 후쿠오카 공항을 출발했으며, 도착 직후 경기도 시흥의 중앙합동신문센터로 옮겨져 국가정보원 등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신문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서울=권호 기자

◆백남운(白南雲·1897~1979)=1947년 월북한 저명한 경제사학자. 일본 유학 시절 가까이 지낸 김광진(전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장)에게 남한 학자 수십 명을 소개하면서 월북시켜 김일성대 창립에 공헌했다. 48년 북한 정권 수립 때 교육상을 맡았으며 과학원 원장·최고인민회의 의장·조국전선 의장을 지냈다. ‘김일성 동지의 영웅적 위업’을 집필해 김일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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