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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윤유선 “다방 마담 시켜 달랬더니 안 해주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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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선(42)은 대중과 친숙하다. 여섯 살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다. 이장호 감독, 신성일·이영옥 주연의 영화 ‘너 또한 별이 되어’(1975년)를 통해서다. 그리고 바로 ‘별’이 됐다. 77년 여덟 살 때 TBC 어린이쇼 ‘호돌이와 토순이’의 MC를 맡았다. 이후로도 꾸준히 많은 역할을 연기해 왔다. 때로는 철없는 며느리 ‘청자’(95년 ‘바람은 불어도’) 같은 푼수였다. 위엄 있는 왕비, 황후(2006년 ‘궁’, 2009년 ‘선덕여왕’)도 잘 어울렸다. 최근에는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윤유선’ 역을 맡았다. 남편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가족과 함께 남동생 집에 얹혀사는 중년 여성의 신세를 연기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두 살 연상의 남편에게 반말도 서슴지 않는 캐릭터다.

 윤유선은 아내·엄마로서도 행복해 보였다.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 2001년 두 살 연상의 현직 판사와 결혼,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2학년 딸을 키우고 있다. 윤유선은 “사람이 참 좋다”고 했다. “사람 인터뷰를 싣는

의 열혈 애독자”라는 말도 했다. 알고 보니 ‘사람 사랑’이 37년 차 연기자 윤유선을 만들어 낸 힘이었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젊은 층은 아역 시절의 윤유선을 모르겠죠.

 “그렇죠. 후배들이 제 아역 시절을 얘기하면 제가 ‘너, 구세대구나’ 해요. 젊은 친구들은 제 아역 시절은 전혀 모르죠.”

●연기를 오래했는데요, 시청자에게 ‘윤유선’은 어떤 이미지일까요.

 “아주 좋은 이미지 같아요. 하하하.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실제 저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아요. 극 속에서 남편에게 반말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릴 때도 지금과 비슷한 이미지였죠.

 “네. 사극이면 아씨, 인현왕후의 어린 시절, 아니면 착한 딸, 이런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연기 외의 다른 일로 뉴스에 나온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시청자 앞에 서 있던 배우 같은데요.

 “크게 뜨지 못해 그런 것 같아요. 호호호. 별로 관심을 안 가져 주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일탈이 별로 없었긴 해요.”

 윤유선은 보수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컸다고 한다.

 “아빠는 제가 연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드라마 ‘쫑파티’하고 새벽 2시에 들어오면 4시까지 혼나고 그랬어요.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었죠. 호호호.”

●여섯 살에 데뷔했죠.

 “이모가 ‘유선이 예쁜데 한번 시켜 보자’ 하셔서요. 엉겁결에 연기를 하게 됐죠. 그런데 어린 나이에 저도 촬영장 왔다 갔다 하는 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 엄마는 정말 ‘연예인 엄마’ 같은 스타일은 아니셨어요.”

●‘연예인 엄마’ 스타일이란 게 있나 보죠.

 “저희 엄마는 극성스럽지 않으셨어요. ‘얘를 좋은 배우로 성장시켜야 한다’ 이런 게 없으셨죠. 선배 연기자들이 저를 참 예뻐하셨는데, 엄마 덕분이었어요. 강부자 선생님이나 전원주 선생님이 ‘너희 엄마가 좋아서 너를 예뻐했다’ 이런 말씀도 하셨었죠.”

 가만히 듣자 하니 윤유선은 드라마 밖에서도 ‘좋은 딸’이 맞는 듯하다.

●제작진이나 다른 연기자들과 관계가 좋을 것 같네요.

 “좋은 편이죠. 제가 사람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실 연예인 중에는 사람 만나는 것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이 있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별 부담이 없고, 그냥 사람이 좋아요. 사실 연기라는 게 다양한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잖아요. 예전에는 연기를 하면서 ‘아니, 이런 대사를 어떻게 해. 뭐야, 이런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요새는 ‘이럴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도 있겠다’ 하고 이해가 돼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생긴 마음 같아요.”

 윤유선은 둥그런 성격 같다. 이미지가 이렇다 보니 ‘악역’을 별로 맡아보지 못했다.

●자신을 색깔로 표현한다면요.

 “연한 노란색? 벽지로 칠해도 되는 연한 노란색. 그런 거 아닐까요? 안 튀고 강렬하지 않은 색깔요.”

●악역은 별로 못 해 봤죠.

 “별로 없었어요. 얼마 전에도 또 ‘착한 큰며느리’ 역할이기에 ‘다방 마담’ 역할로 바꿔 달라 그랬는데 안 시켜 주더라고요.”

●데뷔 이후 줄곧 연기를 해 왔죠. 쉰 적이 없는 것 같네요.

 “고등학교 때,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열심히 안 했어요. 20대에는 제가 굉장히 통통했어요. 여드름도 많았고요. 제가 먹는 것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래서 선배 중에 한 분이 저를 보고 안타까우셨나 봐요. ‘너, 왜 몸 관리 안 하니? 배우가 그렇게 게으르면 되느냐’ 하셨죠. 돌이켜 보면 그 시절에 제가 방송에 발붙이고 있었던 것도 신기해요.”

●스트레스가 많았겠네요.

 “아니요. 주변에서 저더러 ‘요새 좀 속상하겠다’ 그러는데, 저는 ‘네? 하나도 안 속상한데…’ 이랬죠. 이제 돌이켜 보면 제가 늦되게 지났던 것 같아요.”

 윤유선의 20대 때는 또래 여배우들이 많았다.

 “저희 또래가 여배우가 많았어요. 채시라·하희라·유호정·신애라 다 ‘톱’이었죠. 저만 빼고요. 호호호.”

 윤유선은 이들처럼 화려한 주인공으로서 20대를 보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개성 있는 연기자로서 연기의 꽃을 피웠다고 보는 게 맞을 게다. 92년 뮤지컬극 ‘오유란전’에서 기생을 연기했고, 94년 영화 ‘두 여자 이야기’에선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본처와 함께 사는 후처 배역도 했다. 푼수데기 ‘청자’ 역할을 한 것이 그녀 나이 스물여섯 때다. 세상은 대종상 신인여우상, KBS 우수연기상으로 그녀의 실력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과 20대 초반에 ‘연기를 열심히 안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때는 친구들이랑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연예인이 아닌 그냥 친구들이랑요.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때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죠. 어릴 때 저는 또래들보다는 어른들이랑 있을 때가 더 많았으니까. 20대에 친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 게 제게 큰 재산인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윤유선의 CF는 어떤 게 있을까요.

 “아무래도 어렸을 때 찍은 CF겠죠. 아이스크림·껌 이런 광고를 찍었었는데, 그때 자료를 보면 얼굴이 이만하게 커서 저를 모델로 쓴 것도 이상해요. 하하. 진짜 감사하다 못해 제가 봐도 이상한 것 같아요.”

 윤유선은 참 밝다. 가장 풋풋한 시기인 20대에 “자신이 그다지 예쁘지 않았다”는 말을 웃으면서 하니 말이다.

●연기 외길을 걸어왔죠. 다른 것을 해 본 적은 없나요.

 “별로 없어요. 성악 전공을 해 보려고 고등학교 2·3학년 때 성악을 해 본 것 외에는요. 너무 늦게 시작했죠. 그래서 입시에서 떨어졌거든요. 우리 엄마·아빠가 참 훌륭하신 것이 그걸 지켜보고 기다리셨다는 점이에요. 제가 봤을 때도 제가 노래를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 말이에요. 입시 떨어지니까 그제야 ‘네가 계속 해 왔던 연기를 전공하면 어떻겠니’ 하시더라고요.”

●‘재수를 해서라도 성악을 할 것을’ 하는 후회는 없나요.

 “그런 후회는 없고요. 성악은 안 했어야 되는 것 같아요. 하하하. 너무 재능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말은 그렇지만 윤유선은 이따금씩 노래를 불러왔다. 열세 살에 ‘크리스마스 캐럴집’ 음반을 냈다.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크리스마스 앨범집을 내는 게 유행이던 시기다. 스물셋에는 추석 특집 뮤지컬극 ‘오유란전’에서 기생 ‘오유란’ 역을 맡았다. 스물여섯에도 이윤택 연출의 신파극 ‘홍도야 우지 마라’에서 홍도 역을 연기했다. 그때 이후로는 “찬송가만 열심히 부르고 있다”고 한다.

 37년 차 배우인데, 윤유선에겐 큰 시련이나 고비는 없었나 보다.

 "일이 참 꾸준히 있어서요. 제가 배역을 별로 거절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돌이켜 보면 아주 어렵고 힘든 것을 극복해 낸 기억이 별로 없어요. 굳이 연기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좋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더 들면 연기를 더 잘했으면 좋겠다. 좀 더 믿을 만한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늘 하고 있었거든요.”

 어느 PD는 그녀에게 “윤유선, 너에게는 너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없지만 ‘안티(anti)’도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어릴 적 그녀가 출연한 어린이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PD는 “아역 출신으로서 잘 자란, 보석 같은 배우”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평가들에 대해 윤유선은 “참 감사하다. 나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했다.

 여섯 살에 데뷔해 40년 가까이 한결같은 이미지를 유지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대중에게 ‘예쁜 누이 같고, 정겨운 딸·며느리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본인이 생각할 때 제일 예뻤던 때는 언제였나요.

 “어렸을 때 예뻤던 것 같고요. 그리고 지금이 20대 때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하하하. 잘 늙었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관둘까’ 고민한 적도 없나요.

 “없었던 것 같아요. 스물아홉 때쯤에는 대사도 안 외워지고 연기도 안 되고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김영옥·이순재·윤여정 선생님과 같이 작품을 했는데 제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어요. 그분들께 성실함을 많이 배웠어요.”

●자기 관리를 어떻게 해 왔나요.

 “굳이 뭘 관리한 것은 없고요. 욕심이 별로 없었어요. 돈·인기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이에요. 그보다는 내가 좀 더 나 자신을 넓히고, 조금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 하고 있는 ‘하이킥’도 그래요. 내가 탁 튀고 싶은 마음은 없고요. 조화가 잘 이뤄져 ‘이번 하이킥 팀이 좋았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으면 좋겠고요. 저로서도 ‘윤유선이 새로운 모습이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③0년 뒤엔 뭘 하고 있을까요.

 “연기하고 있을 것 같아요. 전 늘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말했거든요. ‘지팡이 짚고 다닐 때까지 연기할 것’이라고.”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녀는 항상 자기 또래 나이의 역할을 잘 연기해 왔으니까.

 “인터뷰 앞두고서 ‘내가 어떤 생각으로 지내 왔을까’ 잠깐 생각해 봤어요. 그것이더라고요. ‘나는 서두르지 않고, 오랫동안 천천히 느림의 미학을 즐긴다’.”  

j 칵테일 >> 아저씨들만 있었던 극 중 ‘러브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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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선은 드라마 속에서 누군가의 딸 혹은 며느리였다. 누군가의 ‘여자’였던 적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이른바 ‘러브라인’(시청자에게 주목받는 극 중 연인 관계)은 별로 형성된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는 ‘고교생 일기’라는 드라마에서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황준욱 오빠랑 약간 러브라인이 있었죠. 20대에는 ‘토지’의 서희 아씨(최수지)를 좋아하는 길상이(윤승원)를 짝사랑하는 역할이었고요. 이후로도 짝사랑을 하거나 누구의 딸이니까 러브라인이 없는 거예요. 황인뢰 감독님이 저더러 맨날 ‘동안(童顔)’이라고 하시면서도 ‘천국의 나그네’라는 아침드라마에서 강남길 오빠랑 같이 부부를 시키셨어요. 그게 첫 러브라인이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엔 ‘바람은 불어도’에서 정성모 오빠랑 부부였어요. 계속 아저씨들만 만나는 거예요. 하하하. 그래서 내가 ‘오빠들 때문에 젊은 남자배우랑 만날 기회가 없다’고 농담을 하고 그랬어요. 그 후로는 조민기·전광렬씨, 최근에 성동일씨랑 부부를 했죠. 퉁퉁한 이두일 오빠랑도 몇 번 부부를 했고요. 이렇다 보니 ‘연하남’이랑 뭘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이젠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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