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 자녀와 대화의 장 넓히다

중앙일보

입력 2011.09.26 00:24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7시, 날이 어둑할 무렵 이상욱씨(50)는 두 자녀와 함께 경기 일산경찰서 송포파출소를 찾았다. 이씨 가족은 일산경찰서가 지난달 16일부터 시행 중인 ‘부모와 함께하는 순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동네 심야순찰을 하는 봉사프로그램이다. 매월 1~10일 일산경찰서 홈페이지에서 접수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씨 가족은 야광조끼와 신호봉을 하나씩 받고 경찰관 한 명과 함께 동네구석구석을 순찰했다. 이씨는 “우연히 길에서 야간순찰을 하고 있는 가족과 마주쳤는데 아이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부러웠다”며 참가 이유를 털어 놓았다. 출발할 땐 별 대화가 없던 박씨와 아이들은 동네를 돌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직 휴대전화가 없는 큰아들 이준희(경기고양 송산중 3)군이 이씨에게 조심스레 휴대전화 이야기를 꺼냈다. 부자의 대화는 한참동안 계속됐다. 이씨는 아이들과 봉사활동을 하는 두 시간여 동안 TV 시청과 같은 사소한 이야기부터 학교생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딸 주희(고양 송산중 1)양은 용돈문제를 꺼내 들었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은 평소에는 나누기 힘든 이야기다. 이군은 “평소 아빠와 함께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며 “학교와 학원 수업에 쫓겨 아빠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장일로 바쁜 아버지들에게 야간순찰 프로그램이 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이씨는 “아이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봉사활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아이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군은 이번 봉사활동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구체적인 꿈에 대해 털어 놓았다. 호텔 경영자를 꿈꾸는 이군은 향후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씨는 “아이가 자신의 꿈에 대해 이렇게 깊게 고민하는지 알지 못했다”며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은 대화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순찰에 함께 나섰던 송포파출소 이용재순경은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일이 거의 없었다”며 “야간순찰을 하며 아이들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며 부러워했다.
 

짧은 시간이라도 지속적으로 대화해야

여성가족부가 5월 청소년과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아버지 3명 중 1명은 “자녀와 대화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부모와자녀와의 대화부족, 특히 아버지와 자녀의 대화가 부족한 것은 직장 일 때문에 평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주말에 자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지만,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은 쉽지 않다.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유계숙 교수는 “대화는 몰아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칭찬과 꾸중은 상황에 맞춰 필요한 때 해줘야 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대화뿐 아니라 자녀에게 상벌을 주는 것조차 주말에 몰아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자녀와의 거리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유 교수는 “하루 10~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라도 자녀와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것”을 주문했다. 가족 간의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위해선 공교육의 역할도 요구된다. 미국 중고등학교에선 의사소통 방법이나 가정에서의 역할을 의무적으로 배우고 있는 반면, 우리 교과과정에선 실생활과 거리가 먼 학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 교수는 “1차적인 문제는 가정에 있겠지만 공교육의 노력과 사회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에서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해 소통의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녀교육 고민 나누는 아버지회

과거에 비해 아버지의 역할이 많이 바뀌면서 자녀를 이해하고 서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공동체를 조직하고 어머니 못지않은 활동을 펼치는 아버지들도 눈에 띈다.

서울 중암중학교 아버지회는 2004년부터 7년째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총31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과 캠프를 가기도 하고 암벽등반과 같은 체험활동을 함께하며 자녀들과 시간을 보낸다. 시험기간에는 당번을 정해 퇴근 후에 학교주변을 순찰한다. 회장 박규환씨는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이 활동의 가장 큰 목적”이라며 “대화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면서 아이들과 계속 가까워지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아버지회 활동에서 어머니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여름 야영에서도 아버지와 자녀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며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서로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지난 몇 년간 회원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교육문제에 대해 고민해왔다. 올 초에는 학교에 협조를 구해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직업 이야기를 들려주고 직장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아버지회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아이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박씨는 “아버지들도 자녀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표현할 기회가 없었는데 아버지회 활동을 하며 자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아이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회의 자녀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회원들은 지역 내 한부모 가정 자녀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문화생활을 하고 멘토를 자처하는 등 사회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유 교수는 “아이를 잘 알기 위해선 자녀를 잘 관찰하고 알아야 한다”며 “자녀와 가까워지고 싶다면 그만큼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사진설명] 15일 ‘부모와 함께하는 순찰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상욱씨(사진 오른쪽)가 아들 이준희군과 함께 야간순찰을 하고 있다.

<강승현 byhuman@joongang.co.kr/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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