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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경선룰 수용 … 민주 후보들 “검증대 서서 겨루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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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원순 변호사가 24일 민주당이 주장해 온 후보단일화 경선 룰을 받아들였다. 민주당도 25일 시장 후보를 선출한다. ‘시민 후보’ 박 변호사와 민주당 간 범야권 후보를 향한 각축전이 본격 시작됐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이틀 앞둔 23일 오후 민주당 신계륜, 천정배, 박영선, 추미애 후보(왼쪽부터)가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에서 TV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박 변호사는 24일 그동안 민주당과 진행됐던 후보단일화 경선 룰 협상과 관련해 “민주당이 요구한 여론조사 3(30%), TV 토론 후 배심원 평가 3(30%), 국민참여경선 4(40%)라는 경선 룰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특히 박 변호사가 여론조사와 함께 국민참여경선(현장투표)도 병행키로 수용함에 따라 범야권 후보를 향한 선거전은 박 변호사의 여론 지지도와 민주당의 조직이 대결하는 모양새가 됐다. 양측의 경쟁은 다음 주 두세 차례의 TV토론회를 거쳐 선관위 후보등록(10월 6∼7일) 이전인 10월 3일께 장충체육관에서 열릴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선출대회에서 결론이 난다.

 민주당은 25일 잠실체육관 전당대회에서 천정배 최고위원, 박영선·추미애 의원, 신계륜 전 의원(기호순) 등 4명 중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와 이날의 현장 투표 결과를 절반씩 반영해 박원순 대항마를 뽑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내 다른 후보를 앞서는 박 의원은 여론조사 우세가 현장 투표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중립을 선언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내심이 박 의원 쪽이란 관측이 많다. 박 의원은 “엄마 같은 마음으로 서울 시민의 고단한 삶을 위로할 세심한 정책을 내겠다”며 “야무지고 당차게 의정 활동을 했던 경험을 서울 시정에서 살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천정배 최고위원은 조직세가 강한 정동영 최고위원이 전면 지원하고 있다. 그러니 현장 투표에선 여론조사 약세를 뒤엎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천 최고위원은 “토건 시정을 바꾸고 복지 서울을 만들겠다”며 “누구보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했고 장관과 4선 의원의 경험을 갖춘 내가 시장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추미애 의원은 옛 민주계의 지원을 받는다. 그는 “단기 업적 위주의 행정에서 벗어나 일자리·교통·주거에서 근본 대책을 내놓아 ‘진짜 서울’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486 인사들의 후방 지원을 받는 신계륜 전 의원은 “일자리와 복지를 동시에 병행하는 정책을 펼칠 준비된 서울시장”이라며 “진보건 보수건 일자리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박 의원과 천 최고위원은 여론조사와 현장 투표를 놓고 각각 우세를 주장하는 가운데 추 의원과 신 전 의원도 “결과를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승리를 자신한다,

예선전 된 민주당 후보 경선
25일 경선이 끝나면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결정되지만 경선전은 마이너 리그다. 당 바깥의 야권 성향 민심은 시민 후보 쪽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덩치로 따지면 갑과 을이 바뀌었다. 의석 87석의 제1 야당 후보들이 당원도 없고 조직도 미약한 시민 후보에게 크게 밀린다. 본지와 한국갤럽이 지난 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범야권 후보 선호도에서 박원순 변호사가 46.0%로 크게 앞섰다. 박영선(9.0%), 추미애(8.6%). 천정배(5.8%), 신계륜(1.3%)의 순이었다.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안철수 쓰나미’가 정치권을 강타한 뒤 박원순 변호사가 지지율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장외 강자’로 등장한 탓이다. 지난 다섯 차례의 민선 서울시장 선거에선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다.

이 때문에 25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완결판이 아닌 게 됐다. 박 변호사와 치르는 후보단일화 경선이 본선이다. 박 변호사는 24일 민주당이 요구한 후보단일화 경선룰을 수용하며 “정당도 조직도 없어 불리할 수 있지만 합의가 중요한 만큼 조건 없이 받겠다”고 밝혔다.

당초 후보단일화 방식을 놓고 박 변호사 를 지지하는 시민사회 인사들은 여론조사를 요구한 반면 민주당 등은 국민참여경선(현장투표) 반영도 주장하며 진통을 겪었다. 여론조사에서 우위인 박 변호사 측과 조직세가 강한 민주당 측의 의견이 부딪쳤다. 이 때문에 박 변호사 측은 국민참여경선의 대안으로 일정 규모의 배심원단을 미리 구성한 뒤 후보자 간 TV토론이 끝나면 이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거치는 배심원 평가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여론조사와 배심원 평가, 국민참여경선을 모두 병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박 변호사가 이 같은 후보단일화 방식을 수용하며 그동안 미지수였던 2단계 본선도 틀을 만들게 됐다.

이런 ‘2단계 후보 경선’은 민주당의 민선 서울시장 후보 선출 역사상 처음이다. 지금까진 민주당 후보의 경쟁자는 민자당이거나 한나라당 후보였다. 초대 민선 서울시장 선거 때 박찬종 전 의원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지만 후보단일화의 대상은 아니었다. 조순 민주당 후보-정원식 민자당 후보-박찬종 무소속 후보 간 3파전이었다. 민주당으로선 이번엔 한나라당 후보에 앞서 당 밖의 ‘시민 후보’란 강적을 먼저 꺾어야 한다. ‘산 너머 산’이다.

당내 후보 경선 과정도 여론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었다. 민주당은 흥행을 높이기 위해 지난 일주일간 TV 토론회를 네 차례나 실시했지만 시청률은 0.4∼1.04%에 불과했다.

영입해서 후보 내던 공식 깨져
과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외부 인물을 수혈해 성공한 경험이 있다. 1995년 6월 초대 민선 서울시장 선거 땐 당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이 조순 전 총리를 영입했다. 국민회의 시절인 98년 6월 선거에선 고건 전 총리를 불러들였다. 영입 후 당내 경선을 거쳐 후보를 내거나(조순 전 시장), 경선 없이 추대해 선거에서 이겼다(고건 전 시장). 열린우리당이 패배했던 2006년 5월 선거 때 후보도 영입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이런 공식이 통하지 않았다. 안철수 바람 속에 야당 밖에서 ‘시민 후보’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고, 장외 강자가 제1 야당 입당에 거리를 두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21일 출마 선언 당시 “입당 문제는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에서) 단일 후보가 된 이후에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 측은 지난 8월 말 손학규 대표 쪽에 “시민 후보로 나서려 하니 지원해 달라”며 당분간 입당할 뜻이 없음을 전했다고 한다.

연세대 김호기(사회학과) 교수는 “박 변호사로 상징되는 시민사회가 민주당에 대해 조건부 지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선뜻 입당하지 않는 것”이라며 “민주당을 포함해 한국 정당들이 대표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서강대 손호철(정치학) 교수도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누적돼 기존 정당과 거리를 두는 게 선거에서 경쟁력이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패배한 직후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오세훈 시장의 시장직 사퇴가 예고되자 민주당에선 보선 낙관론이 팽배했다. 참모들은 손 대표에게 “주민투표 결과를 민주당 승리로 부각해선 안 된다. 겸손한 민주당으로 가야 한다”는 긴급 보고서까지 올렸을 정도다. 그러다 당내 후보 등록일인 15일을 앞두곤 천 최고위원과 신 전 의원 외엔 출마자가 나서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 13일 한명숙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에 이어 원혜영 의원까지 손 대표에게 불출마를 알렸다.

결국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엔 이인영 최고위원, 우상호 전 의원 등 당내 486 인사들과 박선숙 의원 등이 박영선 의원을 여의도 중국집으로 불러내 울면을 사주며 설득했다. “지금은 (울면을 먹는) 우리가 울고 싶지만 나중에 같이 웃자. 출마해 달라”고 강권했다. 이날 밤 귀가한 박 의원에게 이석현 의원이 전화를 걸어 20여 분간 또다시 설득했다. 같은 시간 손 대표는 추 의원을 따로 만나 출마를 독려했다. 안풍 앞에 주눅든 제1 야당 민주당에선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출마 설득전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반전을 기대한다. 후보들은 “진짜 지지율 경쟁은 이제부터다. 지금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했다”(박 의원), “국민의 검증을 거쳐야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 드러난다”(천 최고위원), “박 변호사도 여론조사 지지율은 5%에서 출발했다”(추 의원), “시민운동만을 했던 박 변호사인지, 누가 준비된 시장인지 국민은 면밀히 볼 것”(신 전 의원) 이라며 역전의 자신감을 보인다.
이런 주장엔 민주당 후보가 되면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할 것이란 기대감이 깔려 있다. 박 변호사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되면 후보단일화 과정이 요동칠 수도 있다는 계산도 하고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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