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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만으론 세계인 못 키워, 3국 공동 교과서 밑거름 될 것”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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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후반의 중견 역사학자 손승철 강원대 교수와 안병우 한신대 교수는 지난 2년 동안 씨름해오던 무거운 짐을 최근에야 벗어냈다. 한국과 중국·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를 한데 아우른 교과서 동아시아사를 만든 작업이 그것이다. 내년부터 고교 정규 교과목으로 신설되는 ‘동아시아사’를 위한 것이다. 이는 국내에선 물론 중국·일본을 통틀어서도 최초의 시도였고, 그래서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게 더없이 조심스럽고 힘들었다고 한다.

한·일 관계사(손승철)와 한국중세사(안병우)로 각각 전공은 다르지만 그들이 교과서 저술을 통해 내린 결론은 똑 같았다. “자국 역사에 대한 애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면 배타적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다. 우리 역사도 알아야겠지만 남의 역사도 동시에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설된 동아시아 교과목이 균형 잡힌 시각과 국제감각을 길러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대표저자로 집필한 교과서는 각각 교학사와 천재교육사에서 펴낼 예정이다. 두 저자를 만나 왜 동아시아사를 배워야 하며, 기존의 한국사와 세계사에서는 담지 못한 새로운 내용들이 무엇인지를 들어보았다.

-동아시아사란 교과목이 신설되는 배경은.
▶손승철=“동아시아엔 역사를 둘러싼 갈등이 존재한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파동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고 그 일환으로 동아시아사를 2012학년도부터 가르치게 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이를 결정한 게 2006년이니 이번 교과서는 5년 이상에 걸친 노력의 산물이다.”

▶안병우=“일본의 역사학자들과 연대해 교과서 왜곡을 바로잡는 활동에 참여해 왔다. 이때 느낀 점은 방어적으로 반대운동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주변 국가들에 전범이 될 만한 교과서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움직임이 교과 신설로 이어지게 됐다.”

-기존의 한국사나 세계사 교육을 강화하는 것으로는 부족한가.
▶손=“지금까지 선택과목이던 한국사를 필수로 하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자국사만으로는 온전하게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현재의 한국, 현재의 중국, 현재의 일본은 과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이지 혼자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세계사도 서양사 중심이란 한계가 있다. 그 속엔 한국과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분량이 너무 빈약하다.”

▶안=“자국사 중심 교육은 국가와 민족의 범주를 못 벗어난다. 거기서 그치면 세계인을 길러내지 못한다. 한국사는 우리의 역사일 뿐, 남의 역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세계사는 그 반대다. 우리 역사와 우리 이웃의 역사를 동시에 가르치는 게 동아시아사다.”

-교과서 집필 과정에서 어떤 점을 강조했나.
▶손=“동아시아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상호 교류를 하고 관계를 맺어가면서 지금의 한국, 지금의 중국·일본이 됐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역사적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공동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우리 교과서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기존 한국사나 세계사 교과서와 다른가.
▶안=“가령 14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친 동아시아 교역망의 발달과 은의 유통을 상세하게 소개한 것은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에선 설명하지 못 하던 얘기다. 이를 통해 조선이란 나라가 혼자 산 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와의 교역망 속에 살았다는 얘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어려움은 없었나.
▶손=“개념과 용어가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도 어려움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을 임진전쟁으로 표기한 것도 이번 기회에 보다 학술적으로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왕’과 ‘천황’을 두고서도 집필진 간에 의견이 엇갈렸지만, 우리가 개방적·포용적 자세로 지역사를 쓰기로 한 만큼 그 나라에서 쓰는 용어를 수용하는 게 합리적·객관적이라 판단해 천황으로 표기했다. 한국사 교과서와 동아시아 교과서에서 차이가 있는 용어들을 통일해 나가는 게 앞으로의 과제다.”

▶안=“첫 시도여서 모델이 없었기에 한 줄 한 줄 쓰는 게 지난한 작업이었다. 일찌감치 통사(通史)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상 지역과 시기가 너무 광범위한 데다 국내 연구 수준도 이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대신 선택한 건 주제별로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하게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자국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최대한 객관적 관점에서 지역사를 서술했다면, 이 교재를 일본이나 중국에서 사용해도 되지 않나.
▶손=“기존 한국사에 비하면 포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라 이를 번역해서 그대로 중국이나 일본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발전시켜 나가면 공동교과서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런 교재 개발을 통해 역사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겠나.”

▶안=“공동교과서까지는 안 되겠지만 우리 교과서를 일본어로 번역 출판하려 한다. 일본은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며 침략한 역사적 연원 때문에 이런 과목을 만들기 어렵다. 일본 학자가 ‘우린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한국이 시작했다’고 하더라.”

-어쨌든 이런 시도가 역사갈등 해소를 위한 하나의 첫 출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손=“나는 한·일 역사공동위원회 1, 2기에 모두 참가하고 총간사까지 해봤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이 많다. 생각만큼 성과가 없었던 이유는 쟁점만 갖고 논의했기 때문이다. 출발 자체가 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분쟁이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지만, 역사대화를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식으로 싸움하듯이 하면 성공할 수 없다. 한국 쪽에선 꼭 성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치가 컸고 너무 성급했다. 일본 쪽에선 자기들 잘못한 것부터 자꾸 따져 드니 해봐야 한국 좋은 일만 시킨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해법은 상호 교류협력 분야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서로 할 얘기가 많다. 앞으로 3기
가 시작되면 이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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