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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친위대 옷 만든 ‘BOSS’ 나치 부역 뒤늦게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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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라르스 후고 보스 회장

독일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후고 보스(회장 클라우스 디트리히 라르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적극 협력했던 어두운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다. BBC방송을 비롯한 외신들은 이 회사가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 “국가사회주의(나치) 통치 시절의 후고 보스의 공장에서 고통받은 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21일 보도했다.

 이 사과는 회사 설립자인 오스트리아 출신 후고 보스(Hugo Boss·1885~1948)의 나치 부역을 조명한 책의 출간과 동시에 이뤄졌다. 독일 뮌헨국방대의 로만 쾨스터(경제사 전공)가 쓴 이 책은 후고 보스사의 지원으로 출판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언론을 통해 설립자의 나치 부역에 대한 논란이 일자 전문가의 연구를 통해 명확히 사실을 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보스의 아들 지그프리트 보스는 “그땐 누구나 나치를 위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부친이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독일에서는 폴크스바겐·다임러벤츠(이상 자동차제조사)·도이체방크(은행)·도이체반(철도사) 등 대기업들이 자진해서 전문가를 동원해 나치 협력 의혹에 대해 밝히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출간과 사과는 후고 보스사가 14년 전 언약을 이행한 것이다.

 쾨스터는 책에서 “후고 보스는 회사를 보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치에 협력했다고 말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가 나치의 국가사회주의를 신봉했음을 보여주는 행적이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1924년 독일 서남부의 도시 메칭겐에 소규모 의류 공장을 차린 보스는 31년에 나치당에 가입했다. 그 뒤 독일군의 군복을 만들어 납품했다. 나치돌격대·히틀러청년단·SS친위대 등의 제복도 제작했다. 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뒤에는 공장 옆에 수용소를 만들어 전쟁 포로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다. 140명의 폴란드인과 40명의 프랑스인 등이 강제로 옷을 만드는 일에 동원됐다. 쾨스터는 책에서 “위생 상태와 음식물 제공 수준이 형편없었다”고 기술했다. 그는 그러면서 “보스가 전쟁이 끝나기 한 해 전인 44년에 수용소의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보이는 등 포로들에 대한 배려에 신경 쓴 흔적은 보인다”는 단서를 달았다.

 보스사는 군복 납품을 계기로 급성장했지만 45년 독일의 패전 뒤 보스는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투표권과 사업운영권을 박탈당했다. 거액의 벌금을 물기도 했다. 3년 뒤 그는 숨졌고, 회사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 뒤 67년 유에·조엔 홀리 형제가 경영권을 인수해 고급 정장을 생산하는 브랜드로 키워냈다. 현재는 91년에 홀리 형제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한 이탈리아의 의류업체 마르조토가 대주주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후고 보스=독일의 의류·안경·신발·액세서리·향수 등을 생산·판매하는 회사. 고급 남성복이 주력 제품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재단사인 설립자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선 브랜드명을 휴고 보스로 표기한다. 지난해 17억2900만 유로(2조7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10개국에 6102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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