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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설(世說)

전기관리,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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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승재
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회장
정치평론가

예고 없는 최악의 정전사태로 무방비 상태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현대생활에서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전국에는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이 절반이 넘는다. 전기로 물을 길어놓지 않으면 취사는 말할 것도 없고 용변도 불가능해진다. 이번 정전사태로 전방초소와 군사레이더 시설까지 마비됐다고 한다. 전기관리는 곧 국가안위와 직결돼 있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전력공급이나 전력거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없다. 국민생활과 산업 등 경제활동에 더해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가가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기를 공급하는 송전, 전압을 높이거나 낮추는 변전 혹은 나눠 주는 배전의 업무를 정부가 직접 챙겨야 한다. 한국전력공사가 소관하는 일부를 국가사무로 전환시켜야 바람직하다. 특히 다양한 수단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고파는 시장을 비영리법인이지만 경영효율성 집착이 불가피한 전력거래소라는 사업자에 통째로 맡겨서는 안 될 일이다. 소관부처인 지식경제부가 예·결산 승인권에 임원 임면 혹은 감사권을 통해 감독할 수 있다고 항변하겠지만 본질이 못 된다. 분초 단위로 주시해야 하는 전기관리에서, 위기 시 언론사 등 다른 기관에 협조를 구해야 할 경우에서, 일개 공기관 혹은 사업자의 인프라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안보나 방재 차원에서 관리되었다면 ‘정전에 예고 의무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매뉴얼은 없었을 것이다. 또 전력수요 예측 불발로 순환단전이라는 해이한 대응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며, 3000여 명이 암흑의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불안에 떠는 사태는 방지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200만 가구에 일시적 단전이 별일 아니라는 인식으로 당일에 예정된 의례적 청와대 만찬에 참석한 주무장관의 안일한 행보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이번 정전사태로 우리에게 총을 겨누는 적에게 국방 차원에서 구멍이 노출되었다. 적의 포격에 군사적 요새를 잃은 것보다 더 절실한 인식으로 국가 차원에서 대처해야 한다. 전력공급 체계만 공격당해도 나타날 파장과 피해를 상상하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전력공사법이나 전기사업법 몇 조항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국방 및 안보 관련 법규까지 손질해야 할 사안이다.

정승재 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회장,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