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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사태 재발방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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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정재
경제데스크

이솝우화의 ‘왕따’ 박쥐, 그에겐 남보다 기회가 많았다. 날짐승, 들짐승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잘만 했으면 양쪽을 쥐고 놀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박쥐는 그렇게 못했다. 욕심과 눈치, 계산에 빠져 우왕좌왕한 탓이다. 결국 후세에 “에라이 박쥐 같은 놈”이란 혹평만 남겼다. 그는 “애초 쥐가 아니거나 날개가 없었으면…” 하고 후회했다는 후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요즘 또 시끄러워진 저축은행, 이 왕따 박쥐와 꼭 닮았다. 이름은 은행인데 하는 짓은 대부업체다. 고금리로 예금을 받아 돈 급한 서민에게 꿔준다. 결과는 별로다. 돈벌이는 대부업체에 어림없고 고객 신뢰는 은행에 못 미친다. 실력이 달리면 다음은 뻔하다. 무리수다. 은행보다 이자를 듬뿍 주고 고객을 끌어 모았다. 그 다음은 ‘대박 한 건’을 노린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 잘 모르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다 뭐다 손 댔다가 줄줄이 쪽박을 찼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큰손도 못 피해가는 게 부동산 버블인데 국내 저축은행이 용 빼는 재주 있을 리 없다. 피해는 고객, 설거지는 정부 몫이 됐다. 전직 경제장관 L씨는 “지금처럼 놔두면 계속 왕따 박쥐 꼴이 날 수밖에 없다”며 “체질을 바꾸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L 전 장관이 꼽은 해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덩치를 줄여라. 지난 2월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 계열은 자산이 10조원, 작은 지방은행 뺨친다. 최근 4~5년 새 덩치를 세 배가량 키운 덕이다. 급속히 덩치를 늘리다 보니 근력이 안 따라줬다. 이른바 ‘이상 비대증’이다. 분수에 안 맞는 큰 사업에 돈을 쏟아붓다 망가졌다. 그런데도 부도덕한 경영진은 고객 돈 빼돌리기에 바빴다. 여기엔 정부 책임이 크다. 우선 자산 1조원도 못 되는 저축은행 예금을 200조원 넘는 시중은행과 똑 같이 5000만원까지 지급 보장해줬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는 부실 저축은행을 덜 부실한 저축은행에 떠안겼다. 공적자금을 아낀다는 이유였다. A저축은행 K 회장은 “별 지원도 없이 부실 저축은행을 떠안겼다”며 “거절하면 후한이 두려워 인수할 수밖에 없었고 그 바람에 우리도 부실해졌다”고 털어놨다. 물론 A저축은행의 부실 이유가 어디 그게 다겠는가마는 K 회장 말에도 일리는 있다.

 둘째, 부패 경영진과 유착한 ‘낙하산 감사’를 뿌리 뽑아라. 아예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됐던 금융감독원 출신으로 모든 저축은행 감사 자리를 채우면 어떨까. 대신 대주주 비리를 못 밝히거나 1억원 이상 투자건이 잘못되거나 한 건의 부정만 저질러도 민형사상 무한 책임을 지우는 거다. 전문·도덕성 중 하나라도 모자라는 사람은 아예 포기할 것이다. 그런 자리에 누가 오겠느냐고? 대신 감사의 근무연한을 폐지해 잘 하면 10년이든 20년이든 계속하게 하면 된다. 대주주가 누가 되든 밥 숟가락 하나까지 꿰는 감사 때문에 맘놓고 비리·부정·부패를 저지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셋째, 대형 국책 사업을 앞두곤 꼭 일제 부실 청소 기간을 갖자. 1997년 외환위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때 터졌다. 신용카드 대란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났다. 저축은행 사태를 키운 건 지난해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다. 당시 고위 경제관료의 회상 한 토막. “G20 개최 몇 달 전 청와대를 찾아갔다. 고위 관계자를 만나 ‘저축은행 부실 급하다. 공적자금 넣고 정리해야 한다. 대주주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했더니 당장 돌아온 반응이 ‘공적자금의 기역자도 꺼내지 말라’였다. G20이 더 급했던 거다.”

 이런 일은 또 되풀이되기 쉽다. 그러니 아예 큰 행사 1년 전쯤엔 모든 금융회사 전수조사를 제도화하는 건 어떨까. 치적 앞세우는 집권자 때문에 시장 망가지지 않도록.

이정재 경제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