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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상적 표결’이 신선함을 주는 정치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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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21일 민주당은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 임명동의안 표결에 참가했으며 동의안은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당이 추천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에 대해 한나라당이 ‘찬성’ 당론을 정해주지 않자 민주당 내에는 대법원장 후보 표결을 거부하자는 주장도 강했다. 민주당이 불참했으면 사법부 수장은 여당만의 표결로 동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손학규 대표가 표결 참가를 결단했고 의원들이 따랐다. 그는 “국민에게 손가락질당하고 외면받는 정당정치를 살려내자”며 거부투쟁을 포기한 배경을 밝혔다.

 민주당의 결정은 사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신선한 행동으로 주목받는 건 역설적으로 한국 정치의 현재가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보여준다. 배경이 검으니 정상적인 흰색이 더욱 희게 보이는 것이다. 한국 국회에서 회의를 막고, 농성하고, 부수고, 강행 처리하는 건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비정상이 정상, 정상이 비정상이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민주당이 변화를 보인 것은 최근에 거세게 증명된 ‘정당 불신’ 바람에 영향을 받은 것이 크다. 안철수·박원순·이석연으로 이어지는 ‘정당 밖의 바람’은 여야 모두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경고를 주었다. 손 대표의 결정은 이런 바람을 의식한 작은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정치의 정상화로 이어지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비정상은 이미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만 해도 민주당과 민노당은 한나라당의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려는 걸 오랫동안 저지했다. 한나라당이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 선출을 약속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또 불참·저지 투쟁으로 복귀할지 모른다.

 ‘조용환 표결’도 여야는 정상적인 국회 절차에 따라야 한다. 헌법재판관의 국가관·안보관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조 후보자와 민주당의 설명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으면 그는 선출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일 것이다. 모든 건 국회의 정상적인 절차에 맡겨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