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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소설 같은 기름값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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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한은화
경제부문 기자

이런 말잔치가 없다. 올 들어 쏟아지는 정부의 기름값 얘기다. 얼핏 듣기엔 그럴듯한데, 따져보면 현실성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21일 강영원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발표한 ‘알뜰주유소’ 대책이 그랬다.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가 전국 400여 개의 무폴 주유소에 정유사보다 L당 100원 싸게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올 7월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석유 태스크포스(TF) 팀의 결과 발표 때 기름값을 낮추는 방안으로 거론한 ‘대안주유소’가 구체화된 것이다. 정부가 이를 통해 얻으려는 것은 ‘경쟁’이다. 기름값 싼 주유소가 시장에 많이 등장하면 기존 정유사·주유소가 경쟁을 위해 가격을 낮추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석유공사의 계획은 정유사와 석유 수입업자들을 경쟁 입찰에 참여시켜 L당 100원 싼 기름을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소설에 가깝다. 우선 지난 4~7월 기름값을 L당 100원 인하해 수천억원 손해를 본 정유사들이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수입업자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은 현재 휘발유를 거의 수입하지 않는다. 국내 정유사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린 때문이다. 휘발유를 수입해다가 정유사와 같은 값에 팔아봐야 이문이 남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보다도 L당 100원 싸게 공급하는 입찰에 참여해 봐야 손해가 뻔하다.

 일본산 휘발유를 수입하겠다던 대책도 있었다. 기름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국내 제품보다 오염물질을 더 많이 배출하는 일본산을 들여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환경단체의 반발에 부닥쳐 아예 없던 일이 됐다. 게다가 일본은 휘발유·경유 생산이 모자라 수입을 하는 나라다. 아예 한국이 일본산 기름을 들여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기름값은 거침없이 오르고 있다. 유럽 경제 불안으로 인한 원화 가치 하락까지 기름값 인상에 한몫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실현 가능성 낮은, 말잔치 수준의 대책만 내놓고 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가 분명한 ‘세금 인하’는 쏙 빼놓고서다.

 과연 정부의 다음 대책은 뭘까. “기름값 대책으로 상상 가능한 모든 소설이 나오고 있어 ‘시즌 2’는 뭐가 될지 궁금하다”는 한 업계 관계자의 자조 섞인 말이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

한은화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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