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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중학교땐 37㎏ … 살 찌우려 2년간 매일 삼겹살 먹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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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정연주는 안니카 소렌스탐처럼 여유가 있으면서 파워가 넘치는 선수가 되고 싶어 한다. [ATOM 스튜디오 장윤정]

13개 대회에서 13명의 챔피언.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다. 그 자리를 노리는 ‘수퍼 루키’가 있다. 지난 5월 K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프로 데뷔 이후 처음 우승한 정연주(19·CJ오쇼핑)다. 신인왕 후보 0순위(포인트 1072점으로 1위)고, 23일 현재 상금 랭킹도 4위(2억2088만원)다. 새내기 정연주를 만나 그의 골프 이야기를 들어 봤다.

정연주의 첫인상은 가볍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 그의 얼굴엔 ‘노력파’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몇 마디 말을 듣고 나니 살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영감’이란 별명을 갖고 있지만 ‘댄스 가수’처럼 발랄하다. 그의 내면에는 감춰진 ‘율동과 몸짓’이 있다. 그의 어렸을 적 꿈은 발레리나였단다.

정연주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발레복을 입었다. 그러다 5학년 때 사업 하는 아버지(정부진·51)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에 입문하게 됐다. 주위에서 “비쩍 마른 애가 제법 골프채를 잘 휘두른다”며 칭찬했다. 당시 몸무게는 37㎏으로 앙상할 정도였다.

중1 때까지도 체중이 37㎏밖에 나가지 않아 샷에 파워가 붙지 않았다. 하얀 발레복이 더 어울렸던 그의 여린 체형은 아버지의 ‘살찌우기 프로젝트’ 덕분에 완전히 바뀌었다. 2년 가까이 거의 매일 삼겹살을 먹었다. 키 1m66㎝인 그의 몸매는 이제 단박에 골프 선수란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변했다. 손과 팔뚝은 구릿빛이고 하체는 견고하다. 그래서 240~250야드의 파워 드라이브 샷을 구사한다. 평균 드라이브 샷 거리가 KLPGA 투어 전체 선수 가운데 6위다. 마음먹고 때리면 270야드까지는 거뜬하게 날린다. 이 때문에 그는 롱 게임이 좋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는 그렇게 하얀 발레복의 몸매를 삼겹살에 내주고 골프 게임의 중요한 요소인 장타를 얻었다.

그래서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끝나고 오늘 저녁 삼겹살이나 먹으러 갈까요?”

“아뇨.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삼겹살’이란 말에 ‘노’라는 즉답이 돌아왔다.

“정말 지겹게 먹었어요. 아버지의 강권으로 일주일에 5일은 무조건 삼겹살이 기본 메뉴였죠. 하루 두 끼니를 삼겹살로 먹는 것은 예사였어요. 지금은 1년에 한 번 정도 먹어요(웃음).”

그렇다고 그의 청순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발레를 했던 우아한 리듬이 몸에 배어 있고 그때 배웠던 표정 연기는 아직도 얼굴 속에 가득하다. 낯을 가리는 편이지만 펑펑 웃음이 터지면 10대의 앳된 청순함이 살아난다.

-특별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성스럽게 꾸며 보는 것이죠. 빨간색 등 좋아하는 색상의 옷을 예쁘게 차려 있고 화려한 외출을 해 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하루만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

어릴적 발레를 했던 정연주가 오랜만에 댄스복을 입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흥겨운 댄스 가수로 무대에 서보고 싶다”고도 했다.

“가수요. 흥겨운 댄스 가수로 관객이 많은 무대에 서고 싶어요.”(“골프가 아니었으면 계속 발레를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 10대 아가씨는 골프 대회에서도 “갤러리가 많으면 샷이 더 잘된다”고 얘기했다.)

-몸무게에 전혀 영향이 없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디저트로 매일 먹고 싶은 것은.

“아이스크림이죠. 치즈 맛 아이스크림만 아니면 뭐든 다 먹어요.”(그렇지만 그는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꼭 몸매 때문이라기보다는 너무 살이 찌면 몸도, 마음도, 정신도 무거워진다고 했다. 부상도 입기 쉽다는 게 정연주의 생각이다.)

성격은 기본적으로 차분하다. 집중력을 요구하는 골프 게임 특성에 딱 맞는 성격이다. 이 때문에 정연주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재미없는 이미지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머니 김숙희씨의 얘기는 달랐다.

“연주는 색상으로 치면 원색에 가까워요. 빨간색 등 강렬한 색상을 좋아하지요. 겉으로 표현하는 게 서툴지만 뭐든 하는 일에 열정이 있어요. 붉은 색상만큼이나 노력파이기도 하고요.”

그는 이처럼 붉은 열정으로 골프에 깊이 빠져 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필드에 가는 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아빠가 잠에서 깰 때까지 소파에 앉아 기다릴 정도로 골프에 빠졌다.

골프에 입문해 만 5년 차인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주니어 대회에서 번번이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다 2007년 세화여고 1학년 때 전국 단위 주니어 골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고2 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히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2008년 서울시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가 개인 및 단체전 2관왕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발돋움했다. 2009년 고3 때는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어 2010년 KLPGA 2부 투어에서 상금 랭킹 5위 자격으로 올 시즌 정규 투어에 합류했다.

정연주의 롤 모델은 은퇴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다. 그의 가슴에 ‘레드’의 붉은 열정이 가득 차 있다면 머리는 이성적이고 냉철한 ‘블루’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기 때문이다. ‘애늙은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신중하다. 그런데 요즘 스스로에게 불만이 생겼다. 자신 있는 드라이브 샷의 롱 게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소극적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첫 승이 빨리 나왔고 톱10에도 다섯 차례나 들었어요. 처음 투어를 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를 하나둘씩 이뤄가고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그런데 하반기 대회로 접어들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어요.” 그는 자기 색깔을 잃어버렸다고 반성했다. 경기 때는 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는 스스로 소렌스탐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원하고 있다. “소렌스탐요? 정말 존경하는 선수죠. 매너 좋고 실력 또한 뛰어났잖아요. 과거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면 여유가 있으면서도 파워가 넘쳤죠.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러나 어머니 김씨는 “상대를 너무 배려하다 정작 본인은 리듬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딸아이의 천성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정연주의 올해 목표는 신인왕을 꿰차는 것이다. 내년엔 상금왕을 차지한 뒤 이듬해 일본 등 해외 무대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지금 당장은 흥분하지 않고 남은 하반기 대회에서 차분하고 현명한 플레이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연주는 지금 한국여자골프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이제 자신만의 ‘골프 색깔’을 갖추기 위해 당당한 외출을 준비하고 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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