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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꿈나무] 정직하게 그려낸 우리 교육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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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교 모범생

장수경 지음, 심은숙 그림, 사계절, 176쪽, 8000원

앞니 끄트머리가 부러질 정도로 혹독한 체육 선생님의 체벌, 어머니의 거센 항의, 말썽을 막기 위해 교장 선생이 결정한 상 바꿔치기, 학부모회의 집단 반발과 인터넷 투서, 교육청 조사….

초등학교 3.4학년생들을 위해 쓰여진 동화인 이 책이 전하는 사연은 신문 사회면에나 나올 만하다. 책 제목과 제목 옆에 그려진 잔뜩 찌푸린 인상의 주인공 모습을 보고 말성꾸러기가 모범생으로 개과천선하는 고만고만한 해피 엔딩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4학년생 해룡이는 체육 선생님의 무시무시한 퉁소 매를 맞고도 울지 않을 수 있다는 친구들과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무용 연습시간에 일부러 말썽을 부려 체벌을 자청하는 엉뚱한 친구다. 복도에 세워둔 창문 유리창을 박살내고도 헤헤거리며 천연덕스럽게 굴어 벌을 면하는 밉지 않은 구석도 있다. 한편 반장 영훈은 공부도 잘하고 온갖 궂은 일도 도맡아 한다. 영훈은 1학기 말에 전교 모범상을 받아 2학기에는 전교 어린이회 임원이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둘은 예쁘장한 지민이를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는 앙숙이다.

사건은 자식의 체벌에 흥분한 해룡이 어머니를 무마하기 위해 누가 봐도 영훈이가 받아야 마땅한 모범상이 해룡에게 주어지면서 일파만파로 커진다. 학부모회는 교장 선생의 공개 사과와 모범상 선정 경위를 밝히라 요구하고, 교장은 교사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맞선다. 교실은 승진 또는 무사 퇴직이 지상 목표인 선생들과 자식을 통해 한풀이를 하려는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야합하거나 대립하는 갈등과 알력의 현장인 것이다. 아이들 역시 어른들의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패가 갈린다. 소동의 원인 제공자인 체육 선생이 쫓겨날 처지에 놓이자 찬반 양론으로 갈려 헷갈려 한다. 그러나 가장 괴로운 건 역시 해룡이다. 모범상을 받고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해룡이는 결국 모범상도, 선생님도 다 싫어진다.

칙칙할 정도인 학교 현실을 지켜보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책의 사건 전개가 복잡하고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선악으로 양분하기에는 애매모호해 자칫 아이들에게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몸에는 좋은 약이 된다. '중학년(3.4학년) 문고'라는 이름의 시리즈는 아이들 생각의 키를 한 뼘쯤 키워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붙들고 씨름하는 수고를 거치면 그만큼 소득이 있는 경우라고나 할까. 교사와 학부모들에게도 유용할 것 같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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