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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202곳, 학생부 ‘슬쩍’ 고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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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서울 A고 교사는 지난해 3학년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고쳐줬다. 1학년 학생부에는 장래 희망(진로)이 치과의사로 돼 있었는데, 이 학생이 지원하려는 대학 학과에 맞게 수학교사가 희망이라고 바꾼 것이다. 다른 고교에서는 창의적 재량활동란이 비어 있던 한 학생의 학생부에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형태의 글을 써봄으로써 종합적, 분석적 사고력을 기르는 활동을 집중적으로 했다’는 내용을 끼워 넣었다. 지방의 한 고교는 고3 학생을 ‘무단 결석’에서 ‘질병 조퇴’로 변경해주기도 했다. 이들 학교는 근거 서류도 없이 학생부에 손대거나 정당한 변경 절차를 밟지 않아 교육청 감사에 적발됐다.

 지난해 고 3 생들의 학생부를 부당하게 고쳐줬다가 적발된 사례가 전국 202개 교 7671건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부는 입학사정관 전형 등의 주요 서류로 사용된다. 입시를 앞두고 학교가 조직적으로 내용을 수정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는 한나라당 박보환 의원이 4일 교육과학기술부의 ‘2010년 고 3 학생부 부당정정 현황’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결과다. 15개 시·도교육청(인천은 감사 중이라 제외) 중 경기가 3243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1489건)·광주(1391건) 등의 순이었다. 과천외국어고(625건) 등 부당정정 건수가 100건 이상인 학교도 21곳이었다.

 학생부 내용을 바꾼 항목은 진로지도 영역이 3477건으로 가장 많았다. 3학년 재학 중 희망진로가 바뀌거나 학생이 지원한 학과에 맞춰주기 위해 1, 2 학년 때 기록된 내용을 바꾼 것이다. 간략하게 기록돼 있거나 미기재 상태였던 독서활동란에 구체적 내용을 뒤늦게 적어준 경우가 1331건이었다. 한 고교는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독서를 한다’는 대목을 ‘사회과학 분야 중 정치와 경제에 관심이 있으며, 숙독하는 자세가 돋보인다’고 고쳐주면서 읽지도 않은 책 제목까지 써줬다. 교과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1115건), 특별활동(1050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650건), 봉사활동(436건) 등 거의 모든 항목의 내용이 세탁됐다.

 하지만 교사들은 제자들의 합격을 돕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고 1, 2 담임이 학생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누락된 내용이나 오·탈자를 고친 사례가 많다”며 “학생과 학부모가 요구하면 외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학생부를 부당하게 고쳐 징계 등을 받은 교원은 717명이었다. 중징계(4명)와 경징계(40명) 인원은 많지 않았다. 박보환 의원은 “교사들이 부적절하게 학생부에 손댄 것이 적발된 만큼 정기적으로 관리 실태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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