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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복지논쟁, 더 치열하고 더 강도 높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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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최근 한나라당은 의원연찬회에서 선별적이거나 보편적 복지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서민·민생 복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편, 민주당은 재정지출·복지·조세 등 3대 개혁을 통해 매년 33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보편적 복지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면에는 ‘증세 없는 복지’를 추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복지 확대를 거부하는 국민들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복지를 확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아직까지 없다. 여야 모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모델일지 모른다. 그런데 스웨덴 복지 모델의 결과만 보고 우리는 왜 못 하느냐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결과보다는 어떤 과정을 거쳐 스웨덴 복지 모델이 구축됐는지를 파악해야만 한국형 복지 모델을 만드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핀란드에서 개최된 북유럽정치학회에서 필자가 만난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 논쟁에 대해 이렇게 조언했다. 첫째, 선거를 통해 복지 논쟁을 더욱 치열하게 해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 1930년대 정권을 잡은 사민당이 보수 정당인 농민당과 공조해서 복지 모델을 처음 제시한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보편적 복지 체제를 완성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기간 동안 열 차례 이상의 전국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게 각 정당들이 제시한 복지 모델을 끊임없이 검증받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한가. 서울시에서 실시된 단 한 차례 복지 관련 주민투표를 통해 복지 논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민투표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복지 정책의 네이밍을 ‘민생·서민복지’로 바꾼다고 복지 논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각 정당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 위에서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줄 복지 비전과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재정 여건에 따라 복지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 한국형 맞춤 복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복지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하고 어떻게 검증받을 수 있는가. 결국은 선거를 통해 검증받고, 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을 통해 우선순위가 결정된다.

 둘째, 복지는 복지제도 개혁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세제, 행정, 지방, 교육 개혁 등과 연계해서 추진해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 국가, 광역단체, 지방단체들의 복지에 대한 역할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있다. 스웨덴의 복지정책 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다. 기초 및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확대와 공공서비스 역할을 통해 보편적 복지를 추진하고 있다. 2500개의 소규모 단위로 분산됐던 지방 행정 조직을 800여 개로 통폐합해서 복지 운영의 효율성을 높였다. 다른 지역에서 무상급식을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각 지방단체들이 처한 재정적 상황 등을 기초로 복지정책이 만들어지고 있다.

 셋째, 생산적인 복지 모형은 특정 정치세력의 일방적인 추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치세력들 간의 협의, 타협,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스웨덴의 사회 모델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르프순드 민주주의(Harpsund Democracy)’이다. 하르프순드는 스웨덴 총리의 여름별장인데, 총리가 노사 대표들을 목요일마다 이 별장으로 초청해 경제와 사회 정책 분야의 공조를 이끌어냈다. 우리도 여야 모두 치열하게 복지 논쟁을 하되, 최소 10년 정도의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국가 부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토대로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타협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때만이 생산적 복지 논쟁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