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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홈즈, 잔소리꾼 왓슨 별난 캐릭터로 女心 잡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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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05면

한 여자를 위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한 남자의 초인적인 사랑-. 홈즈의 다트는 여심에 제대로 꽂혔다. 1887년 영국의 코난 도일에 의해 탄생한 이래 다양한 콘텐트로 끊임없이 사랑받아 온 ‘셜록 홈즈’가 뮤지컬이 되어 국내 무대에 처음 올랐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시즌제 프로젝트 뮤지컬이다. 매년 여름 다른 에피소드를 무대에 올릴 계획으로, 후속작 ‘잭 더 리퍼와 셜록 홈즈’ 등을 이미 준비 중이란다. ‘지속가능한’ 뮤지컬을 생산하기 위한 기발한 발상이다. 흥행을 보장받은 캐릭터를 무기로 무한히 새로운 스토리를 창조할 수 있고, 충성도 높은 매니어 군단의 지지를 기반으로 발전적 시도를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셜록 홈즈’, 9월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00년 넘게 전 세계에서 사랑받아온 스타 캐릭터 셜록 홈즈는 그 자체로 이름값을 한다. 티켓 파워를 보장하는 아이돌스타 없이도 370석 중극장 정도는 가볍게 채워 준다. 추리요소를 애매하게 끼워넣은 것이 아닌 ‘본격 추리물’이란 점도 이 무대의 지속가능성에 한몫한다. 본격 추리물이란 수수께끼가 계속 던져지고 의혹이 증폭되는 데 미덕이 있기 때문. 또 모든 장면은 궁금증 유발을 위해 단편적으로 던져지므로 장면 연결이 매끄러울 필요가 없다.

깨알 같은 의문들이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고 다소 억지스러운 구석이 있더라도 대략 큰 매듭이 풀리고 심금을 울리는 인간적인 주제로 마무리된다면, 관객은 감동의 여운 속에 스스로의 IQ를 자책하며 못다 푼 의문의 퍼즐 조각을 나름 재편집해보는 재미에서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음악과 연극의 절묘한 조합으로 드라마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연출력을 요하는 뮤지컬. 여기에 관객의 능력이란 배수진을 치는 추리물은 과연 최고의 궁합이다.

원작에서 서스펜스 추리물이라는 구조만 빌려왔을 뿐, 사건과 캐릭터는 모두 새롭게 창조되어 무대에 올려진 이 ‘순수 창작물’은 창작 뮤지컬의 방법론에 있어서도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흥행전략을 제시한다. 냉철한 두뇌의 명탐정을 ‘사건을 달라’며 어린애같이 보채는, 귀엽기까지 한 인간적 매력으로 무장시켰다. 이런 홈즈의 캐릭터는 20~30대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뮤지컬 관객의 모성본능을 날카롭게 겨냥했다. 홈즈의 절친이자 조언자 왓슨을 바가지 긁는 어부인 느낌의 코믹한 여성 캐릭터로 뒤집은 것은 매력적인 주인공과 가까워지고픈 여심을 투영시킬 수 있는 효과적 장치다.

19세기 말 런던, 크리스마스 이브. 최고 명문 앤더슨가에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사건 관계자는 앤더슨가의 쌍둥이 형제 아담과 에릭, 그리고 아담의 약혼녀 루시. 죽은 사람은 없는 단순 오발 사고였지만 사건 후 루시는 사라지고, 명탐정 홈즈에게 앤더슨 가문의 세 경쟁자, 아담과 에릭 그리고 숙부 포비가 각각 찾아와 저마다 루시 실종사건을 의뢰한다. 현장에 있었던 형제의 증언은 묘하게 엇갈리고, 홈즈는 두 사람의 증언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거짓의 단서를 잡아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지만, 진상을 밝혀 얻어지는 정의가 과연 가치로운 것인가 고뇌할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진실에 직면한다.

‘하나의 상황을 제각기 증언하는 두 사람.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라는 ‘라쇼몽’적 미스터리를 1인2역의 쌍둥이 교대연기라는 ‘지킬 앤 하이드’적 연출로 극대화한 극적 재미에 쌍둥이의 비밀스러운 관계, 부친과 숙부의 관계, 루시와 아담, 에릭의 삼각관계가 얽히고 설킨다. 꼬리를 물고 더해지는 수수께끼에 증폭된 호기심은 파국에 이르러 비로소 한꺼번에 해소된다. 모든 것이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완전한 희생이었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1인 생쇼’를 납득하게 하는 것은 어떤 대사나 설명보다도 강력한 외마디 절규다. 21세기에 결코 있을 리 없는 완벽한 순애보는 19세기의 낭만적 감성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킬’ 이후 이중인격의 교대연기는 대한민국 뮤지컬에 있어 포기하기 힘든 매력적 레퍼토리인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올드보이’급 반전으로 화제몰이 중인 영화 ‘그을린 사랑’에서처럼 ‘1+1=2가 아니라 1’임을 암시하는 필연적인 복선일 뿐 어설픈 지킬 흉내가 아니었다는 점이 또 다른 ‘식스센스’급 반전으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이 반전을 좀 더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를 고안하고, 파국에 이 ‘한 남자’의 절절한 마음을 담은 노래 한가락이 심겨진다면 여심은 한층 더 불붙지 않을까. 단순하지 않은 플롯으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다 읽은 추리소설의 앞 페이지를 뒤적여보듯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뮤지컬을 추구하는 이 작품이 가진 최대의 미덕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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