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카다피, 후세인처럼 안 당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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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이 24일 안성 동아방송예술대학 재단이사장실에서 1996년 동아건설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카다피와 촬영한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순순히 (반군에) 항복하거나 사담 후세인처럼 당하지 않을 것 같다.”

 24일 만난 최원석(68) 전 동아그룹 회장은 자존심이 강한 카다피가 끝까지 싸우며 대응할 것이라며 ‘그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조심스러운 관측을 내놓았다. 최 전 회장은 1983년 리비아 대수로 1·2차 공사를 따내면서 인연을 맺은 이래 14년간 카다피를 봐 왔다. 만난 횟수만도 30차례가 넘는다. 그런 최 전 회장이 얼마 전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경기도 안성 동아방송예술대학 집무실 진열장에 걸려 있던 사진 두 장을 치웠다.

 현지 대수로 공사를 진행하며 카다피와 만나 찍은 사진들이다. 최 전 회장은 지인들에게 카다피와 자신의 인연의 증표이자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린 사업을 따낸 자부심으로 사진을 소개했었다.

 이날 동아방송예술대학 집무실에서 중앙일보·jTBC 합동취재팀이 만난 최 전 회장은 사진을 치운 이유에 대해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지니까…”라며 말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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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가 어떻게 행동할 것 같나.

 “그 양반 자존심 하나는 강하다. 지더라도 사담 후세인처럼 당하지 않을 것 같다. 끝까지 저항할 것 같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2003년 미국이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명분으로 주도한 이라크전쟁에서 패하자 바그다드 교외로 도주했다가 미군에 체포돼 전범재판에 회부됐다. 2006년 12월 30일 사형이 집행됐다.)

 -카다피와 찍은 사진은 왜 정리했나.

 “사진 놓고 있으면 안타까웠다. (카다피가 무서워) 숨도 못 쉬던 그 충신들은 다 어디 갔나 싶다. 절대 권력은 없다는 걸 느꼈다.”

 -카다피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인자한 느낌이었다. 나에겐 개인적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시민들은 좀 무서워했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던가.

 “일할 때는 굉장히 꼼꼼했다. 만나면 실무자나 알 법한 작은 액수의 금액도 ‘결제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돈 관계만은 직접 챙긴 것 같다 .”

 -공사를 할 때만 해도 카다피는 시민에게 인기가 좋았지 않나.

 “1984년 기공식 때 백마를 타고 나타났듯 연출을 잘했다. ”

 -한때 카다피도 시민 생각하는, 마음이 강한 지도자였다. 변한 이유가 뭘까.

 “(최 전 회장은 이 질문을 받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끝내 눈가를 훔쳤다.) 카다피야 어떻겠나. 지금 심정이. 참 그렇다….”

 -카다피의 요새에 간 적 있나.

 “간 적 없다. 거긴 아무나 못 간다. (이날 인터뷰에 배석한 최 전 회장의 둘째아들 최은혁(34) 학교법인 공산학원 상임이사는 “2008년 교육협력 차 리비아에 갔을 때 요새 앞을 지났는데 벽이 높고 경비가 하도 삼엄해 정부 쪽 사람한테 물어보니 ‘리더가 있는 곳’이란 말을 들었다. 중범죄자 교도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리비아 재건사업에 관심이 높다.

 “차남한테 오늘 아침에도 전화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연락이 안 되더라. 궁금하다.”

글=함종선 jTBC 기자, 한은화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동아건설산업㈜을 모체로 했던 동아그룹의 회장이었다. 최 전 회장은 1983년 당시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 1·2차 사업을 따냈다. 96년 공사를 마무리, 이듬해 3~5차 공사까지 맡으려 했으나 외환위기로 무산됐다. 동아그룹은 97년 외환위기로 흔들리면서 2001년 파산선고를 받고 해체됐다. 2004년 최 전 회장은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재판 중에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동아방송예술대학 이사장
[前] 동아건설산업 대표이사회장

19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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